<열린마당>산업설비 보호분야 국가지원 시급해

◆장은구 한국벤틀리네바다 사장 eungu.jang@bently.com

요즘 제조업을 운영하는 분들을 만나 보면 지난 2∼3년간 뼈아픈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수익성이 바닥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이젠 더 이상 졸라맬 허리도 없다며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 중국, 동남아로 공장을 옮기겠다는 중소기업 사장도 한 두명이 아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마저 생산비 절감을 위해 쓸 만한 제조라인을 속속 해외로 이전하고 생산비용은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중소 제조업 관계자들은 자체 기업경쟁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구조적인 절망감에 빠지고 있다.

 어떤 이는 제조업 공동화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면서 겪게 되는 불가피한 현상이며 경쟁력 없는 제조업분야는 일찌감치 저소득국가로 이전하고 한국은 고부가가치 상품제조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보다 인건비와 사회적 생산비용이 훨씬 높은 미국, 유럽, 일본의 중소 제조업체들은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일까.

 선진국 제조업체라고 해서 모두 고부가가치 하이테크제품만 생산해서 종업원을 먹여살리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선진국 제조회사들이 높은 임금체계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 중에는 자체 기계설비의 운영유지 상태가 철저하다는 점이다.

 국내 일부 중소기업이 수억원씩 들여 도입한 값비싼 기계설비를 함부로 운영하다 5∼10년 만에 새 기계로 교체하는 것과 달리 유럽, 미국의 중소 제조업체들은 자체 기계설비를 철저하게 유지, 보수함으로써 한번 도입한 장비는 20∼30년씩 운영한다.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후 국내기업들이 기계설비에 투자한 누적금액은 무려 500조원대로 추정된다. 이처럼 방대한 기계설비투자를 선진국에 비해 절반 정도의 수명밖에 못쓰고 새 기계로 교체하는 제조업체가 많다는 현실은 실로 엄청난 자원낭비이자 국가적인 경쟁력 손실이다.

 국내서도 발전소, 석유화학, 제철, 전자 등 대규모 산업설비에 대한 유지보수는 제대로 운영되고 있으나 우리나라 제조업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제조업체들의 기계설비 유지보수 실태는 매우 낙후된 상황이다.

 특히 생산현장 업무을 천시하는 잘못된 풍토 때문에 제조현장의 설비기술자들이 자주 바뀌면서 기계운영 노하우가 단절되고 정기적인 기계점검마저도 소홀히 하는 사례가 많다.

 이에 따라 힘들게 도입한 외산 기계장비가 몇 달 못가 고장나 멈춰서면 외국 엔지니어를 불러다 칙사 대접을 하며 설비를 고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한번 도입한 설비를 고장없이 20년간 쓰는 기업과 잦은 설비고장으로 생산라인이 중단되고 불필요한 설비투자가 반복되는 기업간의 경쟁력 차이는 명확하다.

 생산현장에서의 경험과 지식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풍토에서 우리나라 제조업을 지킬 유능한 엔지니어집단의 육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제는 국내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비유지분야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대책이 필요한 시기다.

 특히 한번 도입된 기계설비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유지, 운영되는지를 감시하는 전산망을 갖추고 그 실적에 따라 회사운영에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대일 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계류 수입을 억제하는 데도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며 산업설비보호에 무성의한 제조업체에 대해서는 세제상 혜택을 줄여 산업기계를 오래도록 아껴쓰는 풍토를 적극 보급해야만 한다.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만으로 세계일류의 제조업 경쟁력이 완성되지 않는다.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자기 공장의 산업설비를 정성껏 관리하는 현장기술자들의 노력을 제대로 보상해주는 국가시책이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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