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소비자와 신유통

 

 유통혁명이 일고 있다. 그동안 유통을 주도해왔던 힘이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넘어가고 있으며 유통산업 내에서도 대리점이나 백화점 등 전통적인 유통점에서 양판점이나 할인점 등 신유통점으로 이전되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지는 추세다.

 가전산업에서 이같은 경향은 올들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40여년 동안 가전유통을 지배해온 제조업체의 힘이 자꾸만 빠져나가고 대신 공급제품에서 가격결정권에 이르기까지 유통업체들의 입김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하이마트로 대표되는 전자양판점과 이마트로 대표되는 할인점의 급속한 성장세는 그룹계열사인 가전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유통주도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올해 유통관계자들이 추산하고 있는 국내 가전유통 시장규모는 총 7 조원. 이중 하이마트가 1조6500억원, 전자랜드가 7000억원 수준으로 전자전문 양판점의 매출만 전체시장의 30%를 훨씬 웃돈다. 또 할인점에서의 가전매출은 올해 5000억원을 잡고 있는 이마트를 필두로 총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따라서 전자양판점과 할인점에서 판매하는 가전제품의 판매비중이 전체의 45%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최근 고객들의 발길이 양판점이나 할인점으로 집중되고 있어 양판점과 할인점의 매출은 당초 예상보다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실제 올해 이들 양판점과 할인점의 매출 비중은 전체의 50%를 상회할 수도 있다는게 업계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최근들어 양판점과 할인점이 갑작스럽게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양판점과 할인점들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 싸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지난해 연말 서울에 있는 유통업체와 인터넷 쇼핑몰을 대상으로 대형 가전제품 판매가격을 조사한 결과, 평균 판매가격은 인터넷 쇼핑몰을 기준(100)으로 했을때 할인점이 99.2, 백화점 103.4, 전문상가 103.7, 대리점 106.5의 순으로 나타났다. 가전제품과 같이 성능비교가 가능한 제품의 경우 가격이 판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고객들의 발길이 할인점이나 양판점으로 쏠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하나는 양판점이나 할인점에 가면 다양한 제조업체의 상품들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다. 편의성을 위주로 하는 요즈음 고객들의 취향에 맞추어 본다면 집근처에서 손쉽게 다양한 제품을 비교해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양판점과 할인점의 가장 큰 장점이다. 결국 고객들을 유혹하는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상품이 가전유통시장에서 양판점과 할인점의 돌풍을 일으키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양판점과 할인점의 이같은 강점은 총판이나 도소매점 등 복잡한 유통구조를 단순화하고 직거래를 통해 유통비용을 크게 절감했기 때문이다. 또 막강한 구매력을 앞세워 공급가격의 거품을 최대한 제거했다는 것도 원인이다. 전국적으로 수십개에서 수백개에 이르는 점포망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 가전매출의 50%에 육박하는 매출을 자랑하는 양판점이나 할인점들의 주문물량은 엄청나다. 대형 양판점이나 할인점에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면 시장의 주도권을 경쟁업체에 내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제조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보루인 가격결정권 마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제조업체들이 최근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이들 신유통점만을 관리하는 별도의 팀을 신설하거나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출발한다.

 이에 비해 이렇다할 브랜드 상품을 보유하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유통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중소 제조업체, 또는 새로 한국의 가전시장에 발을 내디딘 외국업체들 입장에서는 양판점이나 할인점은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유통채널이다. 이것은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가전업체 대리점들에 비해 신유통점이 우위에 설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이다. 아예 양판점이나 할인점들은 힘있는 브랜드 상품을 갖지 못하거나 시장점유율이 2, 3위인 제조업체에 자사의 브랜드로 제품을 생산토록 요구하기도 한다. 제조업체에는 물량을 확보해주고 대신 유통점에서는 보다 값싼 가격에 제품을 고객들에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유통점의 등장과 부상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만족을 유통사업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양판점과 할인점들의 노력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일본이나 미국과 같이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2, 3년 내에 가전제품을 사기 위해 자연스럽게 할인점이나 양판점을 찾게 될 것이다.

 다만 유통환경이 선진화됐다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구매행위를 일으키는 소비자들의 자세에 변화가 없다면 상대적으로 의미는 퇴색된다. 다양한 유통환경 속에서 소비자들 스스로 자신에게 적합한 제품을 가장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소비자주권을 세우고 올바른 소비생활을 가능케 하는 신유통시대의 바람직한 소비자의 모습이다.

 <양승욱 생활전자부장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