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입문<5>
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친구 길수가 내 표를 점검하면서 반 아이 51명을 놓고 그중에 15명을 우리편으로 골랐던 일이 떠오른다. 누굴 어떻게 골랐는지 모르지만, 투표를 해보니까 14표를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길수가 고른 것에서 1표 차이를 낸 것인데, 초등학교 때 어떻게 그런 계산까지 나왔는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훗날 그 친구를 정계로 끌어 들여 내 참모로 삼을까 하고 알아보았더니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사업을 하며 산다고 하였다. 어쨌든, 서로가 친구와 친구 사이니, 그렇게 크게 벌어지는 격차가 나올 수 없었다.
다시 재선거가 있게 되자 처음과는 양상이 달라졌다. 그것은 처음에 반장으로 나왔던 두 명의 후보자가 이제는 더 이상 나올 수 없으니까 어느 쪽에 붙느냐는 것, 그리고 재선거에 돌입한 당사자들은 남은 세력을 어떻게 자기편으로 영입시키느냐는 것이 승부의 열쇠로 작용했다. 특히 득표율 세 번째로 12명의 지지를 얻은 송하용이 목에 힘을 주고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반장 선거가 정치판처럼 그렇게 되지는 않지만, 마치 12명의 표를 자기가 쥐고 있는 것같이 으시대면서 후보자들에게 거만을 떨었다. 그 못지 않게 8명의 지지를 얻은 이진호도 나에게 타협하려고 했다.
자기를 밀었던 친구들을 설득해서 밀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김송자는 12명의 지지를 받은 송하용에게 무엇인가 커다란 이권을 먹였는지, 나중에 그쪽으로 붙어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자기를 밀어준 친구들은 김송자를 밀어주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그쪽을 밀었고, 이진호는 나를 밀었다. 그 계산이라면 이번에도 나는 참패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나는 연단에 나가서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이제 재선거를 하면서 나는 누굴 밀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누가 되든 우리들의 반장은 일을 잘 할 것이다. 일을 잘 하는 참된 인물을 선출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어느 일면 체념한 상태에서 연설을 하고 내려왔다. 그러자 부반장 러닝메이트가 왜 그런 힘없는 연설을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때 선거가 막 시작되기 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교실 앞마당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와서 멈추더니 김송자 어머니와 운전 기사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여자 친구를 부축해서 내렸다. 목발을 짚고 그 친구는 교실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 광경을 보고 담임 선생을 비롯한 학급 아이들이 입을 쩍 벌리고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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