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행복한 기술자

행복한 기술자가 있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기술자들은 자신을 행복한 기술자라고 회고한다. 연구실에서 나이가 지긋하도록 연구에만 매달려온 노장파 연구원들 중 상당수는 자신을 ‘행복한 기술자’라고 자랑한다.

연구소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 한 분야에서 책과 실험기구와 씨름했다는 것, 젊은 사람들과 미래 정보통신·과학기술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원로들은 행복에 겨워한다.

그런 의미에서 양승택 신임 정보통신부 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행복한 기술자다. 양 장관은 벨연구소에서 국내 최고의 정보통신 전문연구기관의 원장으로, 대학원에서 총장으로 기술자로서의 최고의 영예를 누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나이 예순을 넘도록 정보통신 분야 연구와 인력양성을 담당하는 복을 누리던 그가 국내 정보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에 임명됐다. 행복한 기술자가 국내 경제 살리기의 최첨단에 서 있는 정보통신산업을 이끌게 됐다.

정치권 출신 장관들이 판을 치는 내각에서 양 장관의 위치는 새롭다. CDMA 이동통신시스템·TDX 교환기 개발을 진두지휘한 엔지니어 출신인 양 장관의 경력은 중국 주룽지 총리가 청화대 이공계 출신이었던 만큼 새롭기는 마찬가지다.

엔지니어로서 평소 갖고 있던 정보통신부문에 대한 식견이 속속 여론화되고 있다. 정보통신에 대학 식견과 지식을 바탕으로 내놓는 그의 정책적 진단은 정확하다. 취임 일성부터 차세대 이동통신시스템 개발, 광인터넷 개발 등에 매진하겠다고 밝히는 그의 식견은 ‘세계 기술 흐름을 예측한 기술적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출발은 다소 불안하다. 우리 사회는 행복한 기술자를 마냥 행복하게 두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원장·대학총장이 한 말은 여론화·공론화를 거치는 과정이 상당기간 걸린다. 그러나 장관의 한마디는 곧바로 여론을 거친다.

국내 정보통신업계에서 장관의 위치는 중요하다. 장관의 한마디는 곧 정책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모두 주목한다. 행복한 기술자는 연구기기와 연구원, 적은 수의 외부인과 의견조율 과정을 거치면 무리가 없지만 정통부 장관은 적게는 정보통신업계, 이보다 더 많은 국민을 상대로 의견조율을 거쳐야 한다.

양 장관의 솔직함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솔직함보다는 파장을 먼저 고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회는 양 장관을 행복한 기술자에서 국민의 눈총을 받는 자리로 끌고 나왔다. 국민들은 행복한 기술자에서 행복한 장관으로 변신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행복한 장관보다는 ‘행복한 국민’을 만드는 장관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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