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냅스터 판결 이후

◆박주용 국제부장 jypark@etnews.co.kr

냅스터의 연방항소법원 패소로 온라인 음악 유통에 대한 미국 법원의 입장은 정리된 듯하다. 음악 저작권은 지켜져야 하며 이를 침해하는 행위가 비상업적이라고 해도 법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입장정리는 미국이 음반이나 영상 등 콘텐츠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강국이라는 점에서 자국산업 보호차원의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미국법원의 냅스터에 대한 판결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분명한 승리다. 그렇지만 승리한 자가 얻은 것은 별반 없다. 이번 승리로 음반업계가 얻은 것은 지적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는 수많은 온라인 음반 유통경로 가운데 하나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이를 계기로 앞으로 유사한 서비스들을 제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다지 녹녹지 않다.

냅스터와 함께 무료음악 내려받기가 가능한 대표적인 서비스가 그누텔라다. 이 서비스는 서버없이 음악을 주고 받을 개인과 개인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만 한다. 따라서 냅스터를 제재하기 위해 법원이 명령한 DB상의 저작권 음악 삭제라는 규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음반업계가 마땅한 꼬투리를 잡을 수 없게 돼 있다. 이같은 서비스는 그누텔라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냅스터의 저작권 음악 무료 내려받기가 중단되면 이런 형태의 서비스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냅스터에 대한 제재는 유사 서비스를 실시하는 온라인 업체들을 위축시키고 있기는 하다. 국내에서도 냅스터류의 서비스를 하고 있는 소리바다가 음반업계로부터 맹공을 받고 있다. 법적인 수순을 거친다면 소리바다가 불리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냅스터나 소리바다가 이로 인해 완전히 문을 닫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항소심 이후 냅스터측이 음반업계를 상대로 10억달러의 합의금과 유료화를 내세워 합의를 제안했다. 비록 외견상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지만 수면아래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진행되고 있다. 항소심 결정 이전에 이미 베텔스만이 냅스터에 투자하는 것으로 화해를 했고 최근에는 메이저 음반사인 비방디 유료화를 제안한 냅스터에 긍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고소를 했던 이들이 냅스터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이 가져온 유통환경의 변화다.

메이저 음반업계는 항소심 승리에 이은 지방법원의 결정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는 음악들을 완전히 근절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자신들이 인터넷을 통해 음반 판매에 나설 만큼 전자상거래의 위력을 절감하고 있다. 따라서 음악을 주고 받는 기능에서 탁월한 냅스터를 품안에 끌어들여 새로운 매출창구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음악이나 영상 등 콘텐츠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저작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 점은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주변상황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방식에 의해 한발 늦게 권리 찾기에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스티븐 킹이 온라인으로 소설을 팔 듯이 서태지나 HOT, GOD 등 대부분의 인기스타들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이용해 팬들에게 음반 수수료 수준의 가격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팔 수도 있다.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고 구매자와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은 온라인거래의 가장 큰 장점이기 때문에 이같은 상황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앞으로도 온라인 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유통경로나 방식은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우리 음반업계 모두 지금까지 온라인 유통이라는 새로운 유통환경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이 늦었다고 봐야 한다.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법에 호소하기에는 변화의 폭이 너무 넓고 커졌다. 온라인유통도 활용 가능한 하나의 유통과정으로 보고 자신들과 콘텐츠 제작자들의 이익을 지켜내려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