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상식」이 통하는 남북관계

지경용 ETRI네트워크경제연구팀 팀장

북한은 지난해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짧은 시일 안에 북한 사회 전체가 주체사상을 허물고 쉽게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상하이 발언과 신의주 현장학습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동이 보여주듯,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례로 독일이 최근 북한과의 대사급 외교관계를 설정하면서 북한으로부터 얻어낸 독일 외교관과 원조기관의 북한내 자유로운 활동 등은 지금까지 북한당국이 일관해온 폐쇄 정책을 일부 양보한 것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개방을 위한 변화의 노력인지 아니면 단지 쇠고기 20만톤을 지원받기 위한 일시적 행동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나마 대외관계에 임하는 북한의 자세가 받은 만큼 내주어야 한다는 「상식」이 받아들여지는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부터 정치적·경제적 협력에 이르는 사안들을 북측과 합의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의 태도 때문에 수동적 자세로 대응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북한 일변도라는 여론의 지적을 받아 왔고, 따라서 앞으로 진행될 남북한간 관계에 대한 새로운 모습이 요구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은 대북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형편이다. 대북사업을 주도해 온 대기업들과 현지투자를 염두에 둔 중소·벤처기업들 모두 투자 가능 여부만을 타진할 뿐 투자를 공식화한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실제 지난해 남북간 교역규모는 10월까지 2억달러 선으로 97년의 2억5000만달러보다도 적다. 이는 투자에 따른 위험을 크게 우려하는 상황에 큰 변화가 없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과의 관계가 민족통합이라는 당위적 측면뿐만 아니라 남북한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생산적인 남북간 협력관계를 지원하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통일 독일의 경우 서독정부는 분단 초기에 동서경제교류를 서베를린으로의 통행 및 통신보장을 위한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또한 서독정부는 동독이 서독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막고, 동독을 하나의 독일이라는 큰 틀 속에 가두어 두기 위해 내독교역 및 경제협력을 장려했다. 이러한 협력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서독이 동독과의 교역에서 동독에 더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지만 서독은 그에 대한 대가로 동서독 주민들의 자유로운 상호방문과 통신교류 확대를 위한 통신회선의 증설 등 상호간에 이익이 창출되는 「상식」이 지배하는 관계구조를 밑바탕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40여년 동안 이루어진 일련의 협상과 협정은 양독 국민간의 자유로운 왕래와 통신 그리고 경제협력을 보장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역할을 담당했지 교류협력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우리의 경우 북한의 상황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남북한을 둘러싼 주변환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민족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인도적 차원의 무조건적인 지원은 아낌없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경제협력이나 대북투자에 있어서는 상호간의 이익이 창출되는 지원투자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북투자에 따른 우리 기업이나 민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구체적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간 교류와 협력이 어떠한 정치적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지속될 수 있도록 구속력을 지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하나하나 자리매김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루어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상호교환이라는 「상식」이 지배하는 즉, 상호간의 이익이 창출되는 남북관계 정립이 자리잡는 전환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