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통일시대를 여는 IT산업

고은미 기획조사부장 emko@etnews.co.kr

북한이 변하고 있다. 그 변화는 뚜렷하고 확실하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21세기는 거창한 전변의 세기, 창조의 세기』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당·정·군의 고위간부들을 대동하고 5일간의 비공식 일정으로 중국 개방의 산실인 상하이를 방문하고 21일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상하이에서는 상하이의 실리콘밸리라는 푸등지구를 비롯해 미국의 GM사, 일본의 반도체공장, 그리고 자본주의의 상징인 증권거래소를 방문하고 상하이시의 발전상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돌아가는 길에는 이례적으로 신의주에 들러 앞으로 신의주가 경제특구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신의주는 올해 9월 경의선이 완성되면 남북교류의 중요한 물류기지가 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실제로 작년에 북측이 현대에 공단 개방지로 적극 권유한 곳이다.

이제 우리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중국의 성공한 개혁개방정책이 어떻게든 북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한동안 주춤한 것처럼 보였던 남북경협이 새해들어 다시 활기를 띨 것이고 따라서 IT교류도 활발해질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답방도 앞당겨질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되고 있다. 다시 차분하게 통일시대를 여는 IT산업의 준비가 필요한 때다.

현재 북한은 평양에 있는 조선콤퓨터센터가 IT산업의 중심기관처럼 되어 있고, SW수준도 상당하며, 김 위원장 자신도 컴퓨터와 IT산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컴퓨터 관련 경진대회가 잇따라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말 「제1차 전국 대학생 프로그램 경연 및 전시회」 「전국 고등중학교 학생 컴퓨터 경연 및 타자경연」이 진행됐다고 한다. 미뤄보건대 북한의 IT관련기술이 전문가에서 대학과 중고등학생 등 저변에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IT인력 양성을 위한 북한 당국의 지대한 관심과 컴퓨터 관련 교육정책이 강력히 추진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인터넷 사정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전 국무장관의 방북을 취재했던 취재진에 의해 밝혀졌는 데 북한학자들은 인터넷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게 연구하고 있으나 개방성이 생명인 인터넷이 체체 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당국의 인식 때문에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심지어 북한이 최소 5년 이후에나 인터넷을 부분적으로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도 북한의 언론은 인터넷으로 남한 뉴스 검색을 하는 등 일부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하고 기술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통신 인프라인 데 이제껏 남쪽의 민간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진출해 왔던 것을 이제 정부 당국 차원에서 일관성있게 체계적으로 이루어 내야 한다고 본다.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통신 및 IT통합 전개과정을 보면 좋은 참고가 된다. 동서독간 통신회선 증설은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서독 정부의 통일 정책과 연계되어 추진되었다. 정부의 기본사업으로 궁극적으로 민족간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또한 통신회선들은 모두 양독간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지속적인 협상과 교류의 대상이며 결과물이었다. 서독측은 동서독간의 통신교류에 따른 동독의 초과 비용을 지급한 대가로 자동통화 지역을 확대했으며 동독은 서독과의 통신교류가 중요한 외화벌이의 수단인 동시에 서독과의 경제협력과 교역을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통신교류 확대는 민족의 동질성을 확대하고 통일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도 통일독일이 베를린 붕괴후 동서독 우전성 장관회의를 통해 종합 통신인프라 구축 마스터 플랜인 「텔레콤 2000」을 마련한 것처럼, 남북통일 시대를 대비한 정보통신 장기계획을 가져야 한다. 통신과 IT산업의 활발한 교류는 남북경협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고 남북 상생의 기본 사업이 될 수 있다. 남북 IT교류와 통합과정은 서로의 먼 장래를 생각하여 멀리 내다보는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도 미래도 통신과 IT산업은 이제 체제와 관계없이 우리 삶의 문제다. 남북 당국의 현명한 교류와 지속적인 노력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