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시대」로 대표되는 20세기 후반의 과학 기술의 화두는 단연 「소형화」다. 모든 전자부품, 특히 기본 소자인 전자소자의 소형화는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소자를 모아 넣은 「고집적성」, 전자신호의 소자 통과시간을 줄임으로써 속도를 증가시킨 「고속성」, 전기신호의 양을 줄임으로써 소비에너지를 감소시킨 「저전력성」 등의 성능 향상을 이루었다. 현재 시장에서 판매되는 반도체 소자의 최소 크기는 180나노미터(㎚)인데 이는 사람 머리카락 두께의 500분의 1 크기 수준이다.
이러한 소자 소형화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론상으로 볼 때 모든 물질의 구성요소인 원자의 크기가 0.1㎚ 정도에 해당하므로 약 1000배 가량 더 작아질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는 셈이다. 아직까지도 소형화 기술이 진보할 수 있는 가능성은 풍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노테크놀로지는 21세기 신기술의 핵심이 되는 이유이고, 원자공학 기술은 그 중에서 최첨단의 기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취재팀이 방문한 미국 메릴랜드주 게이더스버그시에 위치한 국립 표준연구원(NIST)의 원자광학 연구팀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필립스 박사 때문으로도 그 명성을 더한다. 필립스 박사는 일명 「원자 정지」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97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 기술은 전자(electron)와 빛(photon)을 대상으로 한 전자공학(electronics) 및 광학(photonics)과 같이 원자(atom)를 대상으로 하는 원자공학(atom-tronics)을 태동시킬 수 있는 근본 기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이 기술은 원자와 빛간의 강한 상호작용을 이용한다. 즉 원자를 고진공의 자기장 및 레이저광 안에 가두고 광에 의해 냉각시키는 원리에 기초한다. 원자를 얼마나 정지시켰느냐 하는 정도는 원자들의 온도로 나타낼 수 있는데, 상온(300K)에 비해 약 100억배 낮은 10●● K 정도까지(약 섭씨 영하 273도) 냉각시킨다. 이렇게 온도를 낮추다 보니 원자의 파동성에 기인한 흥미 있는 「양자 현상」들이 발견됐다. 「모든 원자들이 같은 상태로 얼어붙는」 보즈-아인슈타인 응축현상(BEC:Bose-Einstein Condensation)이 그 중 하나다. 이 현상을 응용해 97년 MIT에서 펄스형 원자 레이저(atomic laser)를 개발한 후, NIST에서는 60미크론의 폭을 가지고 초당 6㎝의 진행 속도를 가진 연속형 원자 레이저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그림 참조). 이는 레이저 포인터의 빛이 퍼지지 않고 진행하는 것과 같아 원자들의 잉크젯 프린팅을 상상할 수 있으며 원자 단위의 그림을 그리는 등 응용성이 풍부하다.
NIST를 중심으로 개발된 원자조작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양자역학의 법칙을 전자계(electron system)가 아닌 원자계(atomic system)에서 직접 실험해 양자역학의 미시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거시 세계의 차이를 좁힐 수 있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했다는 중요한 의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콜로라도주의 볼더(Boulder)에 소재한 NIST 분원에서는 4개의 베릴륨 이온들을 일렬로 세워 정지시킨 시스템의 「인탱글리먼트(entanglement)」 실험에 성공했다. 이는 양자계의 중첩 실험에 성공한 가장 크기가 큰 시스템으로서 양자역학을 거시적인 세계에 한층 가깝게 접근시켰을 뿐 아니라 이에 못지 않게 응용적인 측면에서 양자 컴퓨터를 향한 중요한 첫 걸음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자 컴퓨터는 원자 수준의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인 양자역학을 연산도구로 응용해 만든 것이다. 연산도구에 응용된 양자역학적인 성질은 「중첩(superposition 또는 entanglement)」으로 상상을 초월한 「병렬연산」을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양자 컴퓨터는 연산의 횟수가 매우 많거나 메모리의 크기가 매우 크다. 기존 8비트 컴퓨터가 매 연산시 28(=256)개 중의 1개의 상태를 대상으로 연산을 수행한다면 같은 용량의 양자 컴퓨터는 28(=256)개의 상태를 대상으로 동시에 연산을 수행하게 된다. 고전적인 의미로 보면 256개의 연산을 동시에 수행(병렬 연산:parallel processing)하는 것과 같은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비트 수와 상태의 수가 지수함수적인 관계를 가지므로 비트 수가 증가할수록 병렬연산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0년전 광학적 레이저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오늘과 같은 통신 분야의 엄청난 역할을 상상하였던가요. 최근 개발된 원자 레이저의 경우도 이와 같습니다. 응용 가능 분야가 뚜렷하지는 않으나 잠재력은 무한하죠.』
원자 레이저 개발에 참여했던 NIST 원자광학 연구팀 스테븐 롤스톤 박사의 원자공학 연구에 거는 기대다. 롤스톤 박사는 『원자의 파동성을 활용한 원자 홀로그래피로 컴퓨터 칩의 매우 작은 원자단위의 패턴을 그리는 데 응용할 수 있고, 자이로스코프나 원자 간섭계 등에도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류가 실현하고자 하는 소형화라는 과학기술의 화두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릴랜드 게이더스버그=박재성 논설위원 j spark@etnews.co.kr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이성재 ETRI 원천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sjlee@idea.etri.re.kr>
[그림설명]
그림> NIST에서 개발한 원자레이저 사진. 왼쪽의 밝은 부분인 소스(BEC:Bose-Einstein Condensation)로부터 Na의 원자빔이 초속 6㎝의 속도로 우측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진> (NIST의 실험실 사진) NIST에서 개발한 원자 냉각 장치. 진공속에 있는 Na 원자를 레이저 광으로 냉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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