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현주소>2회-선택과 집중

『벤처위기론이 불거져 나오면서 테헤란밸리나 실리콘밸리 모두 자금조달(펀딩)이 어려워진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총체적인 냉각기를 맞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이곳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술력과 수익모델, 마케팅 능력만 있다면 아직도 얼마든지 펀딩이 가능합니다.』

서니베일에서 새로운 개념의 네트워크장비를 개발중인 하프돔시스템스의 찰스 구 사장은 『벤처거품론이 벤처기업의 구조조정과 함께 벤처캐피털 업계의 투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로 인해 실리콘밸리 투자가들의 투자패턴이 특정 영역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 사장의 말처럼 최근들어 실리콘밸리 벤처비즈니스는 기존의 백화점식보다는 소수의 유망 분야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분야가 무선인터넷의 급부상에 따른 인터넷 인프라와 모바일이다.

인터넷 인프라분야의 경우 네트워크장비를 필두로 수요가 폭발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이동전화를 이용한 고속 무선인터넷시장이 예상을 뒤엎고 폭발적으로 확대, 수년내로 기존 유선인터넷 시장을 압도할 것이란 전망이 대두되면서 실리콘밸리에는 현재 무선 인터넷관련 벤처기업의 주가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세계적인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시스코시스템스는 새너제이에 시스코타운을 건립하는 프로젝트까지 추진중이다.

무선인터넷의 부상은 CDMA 종주국인 한국 엔지니어나 한국계 벤처의 몸값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출신으로 하프돔시스템스에서 근무하는 한 한국계 수석 엔지니어는 『이곳엔 인터넷이나 네트워크 전문인력은 부지기수지만 이를 모바일과 접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드믈다』며 『한국의 CDMA 관련기술은 이곳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어 관련 전문가들의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PDA를 비롯한 모바일분야도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PDA에 이동전화기능이 추가된 3세대 PDA가 출시되면서 관련업체들이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모바일 솔루션, PDA용 게임 등 관련 솔류션업체들이 「벤처스타」의 꿈에 한껏 부풀어 있다.

무선인터넷 관련 인프라분야와 모바일 관련기기 및 솔루션이 부상하면서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엔젤 등 투자자들의 베팅도 갈수록 과감해지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 닷컴기업에 엄청난 금액을 쏟아부었던 투자자들은 닷컴에서 이탈, 네트워크 장비와 모바일 관련기기업체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벤처캐피털중 실리콘밸리에서 활동중인 곳은 절반을 넘고 있다. 지난해 투자규모만도 약 360억달러, 우리돈으로 40조원에 달할 정도다. 약 40만명이 활약중인 것으로 추산되는 엔젤투자 총액도 지난해 무려 350억달러에 달한다. 이중 인터넷관련 투자비중이 54%에 이른다.

따라서 닷컴버블과 무선인터넷 및 모바일업계의 부상은 실리콘밸리의 분야별 투자판도를 완전히 뒤바꾸고 있다. 현지 벤처캐피털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닷컴기업에 주로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상당수가 수익기반과 기술력, 시장성이 탄탄한 네트워크 및 모바일 분야로 돌아서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한국계 벤처컨설턴트로 활동중인 얼리엑시트닷컴의 리처드 박 사장은 『이들 특정분야로 선택과 집중이 심화되면서 기술력이 탁월한 창업초기기업(startup company)의 경우 개발이나 제품이 출시되지 않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펀딩을 성사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의 「선택」과 「집중」 현상은 닷컴업계들도 예외는 아니다. 등을 돌린 투자자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높이고 있으며 오프라인의 강화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닷컴의 간판주자인 아마존이 오프라인의 서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더 이상의 수익모델을 찾기 힘들다는 B2C업체들도 아이디어를 총동원, 벼랑끝 곡예를 계속하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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