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투데이>(어제 오늘 내일 10회)-떠오르는 회사, 지는 회사

한때 웬만한 기업의 모든 업무용 기기에 IBM 로고가 새겨진 적이 있었다. IBM은 1890년에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대 컴퓨터 기업이다.

당시 많은 프로그래머들은 사무실을 가득 메웠던 대형 컴퓨터들을 운영하기 위해 프로그램 언어인 코볼(COBOL)을 배웠고 IBM이 만들어낸 로직 눈금자(Logic Ruler)를 이용, 프린트된 종이 뒤에 아키텍처(Architecture)를 그려내곤 했다.

IBM은 1980년대 초 그 위상이 절정에 이르렀다. 1년 매출이 당시 한창 수출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한국과 맞먹을 정도였다. IBM 회장이 80년대 중반에 자신의 전용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린 적이 있었다. 당시 IBM 회장의 방문을 한국 신문들은 헤드라인에 올렸고 월간지 「신동아」는 이 회장의 한국방문을 특집으로 실으며 과연 IBM의 회장이라고 평했었다.

하지만 사실 이때부터 IBM은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생각하라(Think)」는 IBM의 모토는 급변하는 시장에 대처하기에 너무 약했다. 이들도 하나의 핑계를 생각해내기는 했었다. 바로 IBM 기기만이 거대한 양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으며 따라서 IBM을 상징하던 대형 컴퓨터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IBM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 회사는 다름 아닌 애플컴퓨터사였다. 1976년 휴렛패커드에서 일하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집에서 취미 삼아 컴퓨터를 만들었고 이를 애플I 이라고 이름지어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소개시켰었다. 스티브 잡스와 함께 만든 이 컴퓨터는 널빤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들은 이듬해인 1977년 애플컴퓨터사를 법인화, 애플Ⅱ와 메모리를 증가시키고 베이직 언어를 사용하는 애플Ⅱ-e를 잇따라 시중에 내놓았다. 그리고 학교 및 대학에 무료 기증하는 형식의 대대적인 공격적 경영방식을 택했다.

IBM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애플컴퓨터사를 경쟁사로 여겼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IBM도 스스로 시대 흐름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는 있었던 듯 싶다.

IBM 관계자들은 1980년 7월 빌 게이츠와 비밀리에 만남을 갖고 앞으로 나올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엔지니어 윌리엄 로웨가 지휘하는 12명의 팀이 「아콘」이라는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제작에 들어간다.

IBM이 새로운 개인용 컴퓨터를 내놓을 것이라는 소문은 훨씬 전부터 널리 퍼져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은 애플컴퓨터사의 판매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IBM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신용도도 대단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IBM의 개인용 컴퓨터 판매만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였다. IBM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닌 비밀 프로젝트에 이른바 체스(서양 장기)라는 암호명을 붙이게 된다.

그리고 1981년 8월 12일 최초로 IBM PC가 대중에게 소개됐다. 개인용 컴퓨터를 의미하는 PC도 IBM이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다. PC는 IBM이 처음으로 소매상들을 통해 내놓은 컴퓨터였으며 자사가 조립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IBM의 PC시장 독주는 1983년 애플컴퓨터사가 150만달러를 들여 제작한 단 한번의 광고로 인해 막을 내리고 만다.<테리리기자 terry@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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