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밀레니엄 CEO (8)

윈드리버시스템스 제리 피들러

 상어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떠도는 토말레스(Tomales) 해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구름 낀 먼 하늘에 천둥이 몰려오고 있었다. 해변에 서 있던 제리 피들러는 카약을 물에 띄웠다. 그는 해가 지기 전에 꼭 카약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 난 해낼 수 있어』라고 피들러는 중얼거렸다. 버둥거리며 물에 빠지기를 몇번, 마침내 카약이 바람을 등에 지고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윈드리버시스템스(Wind River Systems)의 제리 피들러(Jerry Fiddler·47) 회장은 사업이 위기의 순간을 맞을 때마다 토말레스 해변을 떠올린다. 와이오밍의 산맥 이름을 따서 이름붙인 윈드리버는 리얼타임 OS 전문업체. 리얼타임 OS란 가정용이나 산업용 전자기기에 내장되는 작고 가벼운 실시간 운용체계다. 포스트­PC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PC시장의 MS­DOS나 윈도처럼 소프트웨어의 핵으로 부상하게 된다.

 피들러는 81년 윈드리버를 설립하기 전까지 거의 히피처럼 살았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기타를 쳤다. 그러다 마침내 일리노이주 어배나(Urbana)의 한 밴드에서 자신이 위대한 기타리스트가 되기에는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고물 밴을 몰고 여기저기 여행하다가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 캠퍼스를 거닐던 피들러는 우연히 게시판에서 인문과학과 컴퓨터를 잘 아는 사람을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본다. 일리노이대학에서 음악과 사진, 컴퓨터과학을 두루 공부했던 피들러에게 딱 알맞은 일거리였다. 돈도 떨어지고 오랜 여행에서 지친 피들러는 버클리 랩에 한동안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3년 후 그는 리얼타임 OS의 전문가가 됐지만 경제사정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던 피들러는 어느날 집주인이 창고를 파는 바람에 길거리로 쫓겨나게 된다. 화가 난 그는 버클리 랩에 사표를 내고 차를 판 돈으로 다시 정처없는 유럽 여행을 떠난다.

 10개월 후 돌아온 피들러는 버클리 랩의 친구였던 데이비드 윌너(David Wilner)와 함께 여행중 얻은 아이디어로 윈드리버시스템스를 시작한다. 윈드리버는 임베디드시장의 대표주자로 성장했고 이 회사의 리얼타임 OS인 「VxWork」는 나사의 우주비행선 패스파인더호에 장착돼 화성으로 쏘아올려질 만큼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올해는 피들러에게 고비가 될 것이 틀림없다. 정보가전 시대를 앞두고 임베디드 OS시장이 소프트웨어업계 최대의 격전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윈드리버시스템스는 QNX·마이크로텍·인티그레이티드시스템스같은 경쟁업체 이외에도 윈도CE를 내세운 MS, 자바2를 밀어붙이고 있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상대해야 한다. 윈드리버와 QNX소프트웨어 등 그동안 리얼타임시장의 강자 자리를 지켰던 회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같은 위기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최근 피들러는 외부인사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캘리포니아대학 석사 출신의 데니스 사장은 실리콘밸리그룹(Silicon Valley Group)의 부사장과 세미컨덕터시스템스의 부사장을 거쳐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pplied Materials)의 부사장으로 일하다가 윈드리버로 옮겼다.

 두 사람은 이제부터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한다. 하지만 피들러는 타고난 낙천주의자다. 거대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부딪쳐야 할 운명에 아랑곳없이 그는 정보가전시장을 향해 윈드리버호의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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