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한글 새 자모체제 도입 IT업계에 유리

 나는 독일 본대학교에서 한글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최근 한국내 한글학자들이 현행 자모순체계를 버리고 새로운 순서에 의한 한글사전을 편찬해야 한다는 논의에 대해 순수 한글 차원과 새로운 컴퓨터 코드체계 차원에서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행 한글 자모 순서의 흔적을 살펴보면 16세기부터 널리 반포돼 있던 사전 「훈몽자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훈몽자회」의 한글 자모 순서는 「훈민정음」의 그것과 거의 독립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훈민정음」에 표현된 한글에 대한 원칙은 「훈몽자회」에서는 매우 작은 규모로만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은 새롭게 창조된 한글의 철학적인 바탕(음양오행설)을 명백하게 알려 주었지만 한글 자모 배열순서에 대한 언급은 간접적으로만 나타냈다. 나는 연구과정에서 몇 단계를 거쳐 여러 측면하에 여러 한글 자모 순서체계를 찾게 되었다. 먼저 글자들이 언급된 차례로 다시 그들을 나열하는 간편한 방법을 택했다. 세종대왕이 쓴 「예의」라는 서문에 배열된 글자의 순서를 반복하면서 한글 자모로 정하는 것이 뜻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과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음양오행의 철학사상에 의한 한글 자모 순서는 제일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철학적 측면에 따라 자모 순서를 조명할 때 먼저 한글의 기초 구조를 확정(모음은 자음 앞에서 자리를 잡는 법)하고 나서 모음과 자음의 각 순서를 찾아내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 새 글자의 창조과정에서 적용된 음양·오행·천수 등 철학설을 토대로 그것에 해당되는 내용들을 분석했다. 이런 방법으로 각 모음과 자음이 제자리를 가지고 있는 순서를 이룰 수 있었기에 이것은 한글의 순서체제, 알파벳적인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한글 자체의 실용성 관점에서 볼 때 현행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순서로 사전을 편찬할 필요성은 전혀 없다는 것을 나는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의 정보기술업계로 봐서는 새로운 순서의 자모체제 도입이 기술적으로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한글 창제 당시의 철학에 의한 새 순서는 남북한과 연변(중국)지역을 포함한 한민족간의 한글 통일코드에 대한 토론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또한 계속 발전하고 있는 멀티미디어분야와 특히 학계에 요구되는 조합형에도 적극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알브레히트 휴베 huwe@uni-bonn.de

 *알브레히트 휴베 박사는 독일인으로는 유일한 한글학자로서, 지난 96∼97학기 동안 한국외국어대학교 교환교수로도 재직한 바 있으며 한국명은 허배, 현재 본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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