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55)

 그녀의 집에서 대화를 나눌 때 한국에 애인이 있다고 말했는데도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애인이란 송혜련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사실, 스즈키와 함께 여행을 오면서도 송혜련에 대해 큰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 한참 망설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죄지을 일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변명하면서 함께 오긴 했지만, 애교가 많은 스즈키를 대하면서 과연 잘 넘길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지내놓고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 사건이 벌어지길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조금 떨어진 산 아래로 내려갔다. 길에는 눈이 치워졌으나 산비탈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고, 가로등에 비쳐 눈이 하얗게 반사되었다. 길가의 상점에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기념품들은 대부분 일본 토산품들이었다.

 연극 공연장 역시 예약을 해야 했는데, 생각보다 예약 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다. 그녀는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에 동경에서 예약을 해놓은 것이다. 한 시간 동안 공연된 가부키는 일본 전통극이라는 점을 빼면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재미도 없었다. 처음에는 의상과 발성이 새로워서 관심을 끌었지만, 여정이 피곤해서인지 졸음이 와서 억지로 참았다. 스즈키를 옆에 앉혀 놓고 졸면 그녀 나라의 전통에 대해서 무시한다는 생각을 할까봐 열심히 보았다. 극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살 것만 같았다.

 우리는 다시 숙소 쪽으로 올라가서 그 옆에 있는 노천탕으로 갔다. 밖에 온천을 만들어 놓았는데, 매우 넓었고, 바위들을 적당히 배치해서 칸막이처럼 가려놓기는 했지만, 남녀 구별이 없는 혼탕이었다.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나체가 된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중년 이상의 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많았고, 외국인 관광객 일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곳이 남녀 혼탕이라는 사실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녀 앞에서 벗은 몸을 보인다는 것이 계면쩍어 망설이다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온천은 숙소 안에도 있어요. 그럼 방에 들어가서 술이나 마셔요.』

 『그렇게 합시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외출복을 벗고 여관에서 제공하는 전통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우리는 여관 종업원에게 양주를 가져오게 하고 다다미방에 상을 차렸다. 스즈키가 나를 쳐다보더니 미소지으면서 물었다.

 『여긴 게이샤가 있어요. 원하시면 부를까요?』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