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PC산업의 미래

신영현 BTC정보통신 사장

 올들어 PC수출이 급증하면서 한국 PC산업의 미래에 대해 일종의 낙관론이 유행하는 듯하다.

 미국 PC시장을 파고드는 한국 PC업체를 겨냥해 세계적 PC업체들이 잇따라 견제성 소송을 제기하고 있고, 일본에서 국산PC가 시장점유율 2위에 오르는 등 한국 PC산업의 위상강화를 실감케 하는 정보를 접하면서 PC관련업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갖는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PC산업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IMF로 인해 인위적으로 높아진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시기적절하게 세계 PC시장의 저가형 수요를 공략해 들어간 국내 PC업체 관계자들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대만 PC업체들의 엄청난 생산규모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한국 PC업체들은 이제 규모 면에서도 대만과 「비교」할 만한 위치에 올라서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낙관적인 상황전개에도 불구하고 한국 PC산업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소는 여전히 많다. 무엇보다도 밑바닥을 모를 정도로 내려가기만 하는 초저가 PC 경쟁 속에서 국내 PC업체들이 언제까지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것인지가 문제다.

 우리나라가 CRT모니터와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메모리램, CD롬 드라이브 등 주요 PC부품 생산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점을 들어 한국 PC산업의 구조적 우위를 낙관하는 사람도 많지만 세계 PC시장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PC가격에 반비례해 소비자 요구는 더욱 까다롭고 세분화하면서 세계 PC업체들은 다양한 콘셉트의 신형 PC제품을 신속히 개발하는 순발력이 더없이 필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지구 반대편 어떤 소비자층이 원하는 PC제품이 무엇인지를 재빨리 파악해내는 정보력이 가격경쟁력보다 우선하는 시장상황이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PC산업구조가 해외에 충분히 노출된 상황에서 값싼 국산PC부품의 존재가 반드시 우리나라 PC업계에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경쟁요소는 개별 소비자 요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콘셉트의 PC제품을 신속히 기획·개발하는 정보력이다. 한국 PC산업이 최근의 양적성장을 받쳐준 가격경쟁력에 도취해 정보수집능력의 개선을 소홀히 한다면 국산PC의 수출행진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일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PC업체들은 해외시장정보에서 언제나 대만보다 한발 늦는 경우가 많았다. 전세계에 뻗친 화교 네트워크의 위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국내 PC관련업체 간의 「정보공유」에 대한 마인드 부족이 근본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부지런히 외국에 드나들며 수집한 해외 PC시장정보가 개별업체 담당자의 머릿속에서 대부분 사장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다. 외국 전시회에 나갈 여력도 부족한 중소 PC부품업체들은 상황이 더욱 나빠 해외 기술정보에 대해 까막눈인 상황에서 신제품 개발보다는 기존 제품을 싸게 만드는 생산기술에만 몰두하는 실정이다.

 일부 PC제조업체가 세계 PC시장의 최신 고급정보를 독점하다가 어느날 부품업체에 샘플을 하나 던져주고 똑같이 만들어 내라는 주문만 내리는 PC생산환경에서는 부품업체 고유의 창의적인 노하우가 담긴 제품이 나올 여지가 드물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PC조립업체와 부품업체 사이의 정보공유는 인맥·학연 등을 이용한 원시적 창구만으로 가동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국내 PC관련업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사이버포럼의 설립을 촉구하고 싶다. 엄격한 참가자격제한과 신원확인과정을 거친 업계 전문가들만 모여 부문별 기술정보, 해외시장정보를 자유롭게 교환하는 사이버공간이 열린다면 적지 않은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한국 PC산업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적절한 지식인프라 구축에 PC업계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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