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이라는 기술자(우리는 그를 대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왜냐하면 시인이며 스님이었던 분과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후에 오준호라는 기술자를 한 명 더 영입했다. 오준호는 청계천 바이트숍에서 컴퓨터 조립을 하였던 기술자였는데, 내가 그를 높이 평가한 것은 복제의 천재였기 때문이었다. 복제 기술이 뛰어난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계속 복제하는 일에 활용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개발토록 하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형이하학이든 형이상학이든 새로운 창조는 반드시 기존 틀의 모방에서 시작되게 마련이었다. 그 점에 있어 오준호의 재능을 활용할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공장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단순한 용역도 맡아서 하였다. 단순한 용역이라고 하면 응용 프로그램의 활용이었다.
청계천 세운상가에 들렸는데 한번은 그곳을 방문했던 방직공장의 간부가 여공들의 출근 점호에 대해서 자동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 전자 장치로 된 출근 카드를 말하는 것이었다. 직원이 회사에 출근하여 그 카드를 입력기에 넣으면 그것이 체크되어 출근 시각이 찍히는 것이다. 퇴근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점호 장치는 일본 기업에서는 이미 활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 기술진에 의뢰하니 그 장치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개당 1500원씩 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응용프로그램으로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그 간부에게 30만원을 주면 그것을 개발해서 주겠다고 하였다. 깜짝 놀란 그 간부는 개발해 주면 100만원을 내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 길로 사무실에 들어가 이틀 만에 그것을 개발해서 제출했다. 물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었기 때문에 그 기계는 따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단순 작업은 경우에 따라서는 복제 수준을 면치 못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복제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일본에서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는 점호 장치를 접하지 않았다. 그것을 구입하는 데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접할 기회도 없었지만, 설사 볼 수 있었다고 하여도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응용했을 것이다.
그 후에 방직 공장에서는 내가 개발해 준 프로그램을 가지고 출퇴근 점호 카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는데, 훗날 그것을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대조해서 살펴보니 너무나 흡사했다. 프로그램의 구조적인 원칙은 공통적이었기 때문에 일본 제품을 보지 않았는데도 흡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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