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97)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겠네. 그러나 홍 사장은 기술자 출신이 아니니까 우리 심정을 잘 몰라서 그런 거야.』

 노 과장은 내가 사표 쓰는 것을 극구 말렸다.

 『전에 모셨던 최 사장님도 기술자 출신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이 욕을 잘하고 좀 비윤리적인 데가 있기는 했지만 기술자들을 아껴주었습니다. 첨단 기업의 장래는 기술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셨으니까요. 컴퓨터 산업은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기술자의 연구개발에 승부가 날 것입니다. 기술자들을 판매 일선에 내몰고,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영자의 컴퓨터 회사라면 미래가 눈에 보입니다.』

 『당신 혹시 다른 컴퓨터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조건이 좋다고 함부로 옮기는 것을 저는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난번에 다른 사람이 모두 자리를 옮겼어도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먹고 사는 것만 바랐다면 더 좋은 자리도 있었고, 무엇보다 제가 제대할 때 군기관에서 계속 문관으로 남아 일해 달라고 했는데도 거절했습니다. 군기관에 남아 통신 관계 일을 한다면 대우도 좋았을 것이고 편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단순히 기술을 써 먹는다는 것에 그치기보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싶었습니다.』

 『나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젠가 생각했던 일을 하려고 합니다. 독자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를 차리고 싶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현실에서 벤처기업의 발상을 하는 사람은 적었다. 다만 그 무렵 번성하던 청계천 일대의 세운상가가 벤처기업의 온상이었을 것이다. 주로 한두 명, 많게는 서너 명이 힘을 합쳐 조그만 부품 가게를 차렸는데, 엄밀하게 말해 그것도 벤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청계천 세운상가에 진출할 만한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럴 만한 독자적인 제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물론, 세운상가 전자타운에 운집한 구멍가게가 모두 기술력으로 뭉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리버스엔지니어링(제품 복제)의 수준에 머물렀다.

 『벤처기업을 하겠다는 것이오?』

 벤처기업은 그 용어가 흔하게 사용되고 있지 않았다. 다만 미국과 일본에서 점차 번지고 있던 신종 용어였다. 그곳에서는 80년대부터 그 용어가 번지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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