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다를 바라봤다. 커다란 상선 한 척이 저 멀리 지나가고 있었고, 가까운 곳에서 작은 고기잡이배가 통통거리는 엔진 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멀리 지나가는 큰 배는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으나, 한동안 있으니 작은 섬 뒤편으로 모습을 감췄다. 바다갈매기가 소리를 내면서 바다 위를 선회했고, 파도가 방파제 난간에 부딪히면서 물거품을 냈다. 옷을 얇게 입고 있는 그녀가 추워하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점이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 빈대떡과 술을 주문했다.
『소주를 마실 수 있어요?』
나는 그녀에게 술을 권했다.
『못 마셔요.』
하면서 그녀는 얼른 잔을 내밀었다.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사레가 들어 기침을 하는 것을 보면 잘 마시지 못하는 것은 사실인 듯했다. 그녀는 한 잔을 가지고 계속 들었다 놓았다 했으며, 한 병의 술은 내가 모두 마셨다. 천막 안에는 우리들과 비슷한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고, 더러는 아이를 데리고 부부가 와서 음식을 먹는 모습도 보였다. 어떤 사람은 신혼여행을 왔는지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바닷바람은 더욱 거칠어졌지만, 한낮이 되면서 날씨는 푸근했다. 천막 안에서 몸을 녹이고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방파제 위를 걸어가면서 파도가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 멀리서 울리는 고동 소리, 가까이 지나가는 고기잡이배의 엔진 소리, 사람들의 말 소리와 웃음 소리.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그런 것들은 바다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소리와 소리뿐만이 아니라 을씨년스런 바다 풍경은 그것이 을씨년스럽다는 이유로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바닷바람에 자주 머리가 헝클어지자 그녀는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에 파묻힌 그녀의 귀여운 얼굴은 잔잔한 미소 속에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도 미소를 짓는 표정이었다. 은행 창구에서 손님들에게 미소를 짓는 습관이 있어 생긴 표정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항상 웃는 그녀의 얼굴은 바라보는 사람에게 평안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충동이 너무나 강해서 거의 입밖에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참고 또 참고, 또 참으면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용기를 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것도 여러 번 생각하다가 하나 둘 셋 하고 마음속으로 구령을 하고는 덥석 잡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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