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전자산업 40년> 컴퓨터부문 성장사

 한국 컴퓨터 역사의 출발점은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이 인구센서스 통계를 위해 미국 IBM사의 「IBM 1401」 모델을 도입했던 67년 4월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언론에서는 인구조사가 4백50명의 인력으로 14년 반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었지만 컴퓨터의 도입으로 이 작업을 1년 반만에 완료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61년에 통계국은 트랜지스터를 주기억장치로 사용한 카드천공방식의 PCS시스템을 도입해 각종 통계업무에 활용하고 있었으나 이 기종은 컴퓨터로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최초의 컴퓨터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전후 폐허더미 속에서 경제부흥을 이뤄야 한다는 명분이 힘을 얻게되면서 국내에서도 67년을 기점으로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과학기술처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설립. 경제부흥의 요체로 과학기술정책을 정부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67년 과학기술처가 설립됐고 한국생산성본부가 일본 후지쯔의 「파콤 222」 제품을 도입, 과학기술처의 기술요원 양성을 추진하면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자정보처리시스템(EDPS) 교육이 실시됐다. 또 67년에는 KIST가 설립돼 국내 컴퓨터 관련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주축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으로 컴퓨터가 자리잡으면서 어셈블리·코볼·포트란 등 본격적인 프로그래밍 교육이 이때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IBM을 비롯해 콘트롤데이타코리아(CDK)·NCR 등 컴퓨터 관련 기업들의 한국 진출도 본격화됐다.

 각 기업들의 전산실 설립 붐이 불었던 것도 60년대 말부터로, 전산실 개소식 행사에는 고위관료가 참석하는 것이 관례화됐으며 신문에서는 경제재건의 의미를 부각, 대서특필하는 등 생산성증대와 경제부흥을 위한 첨병인 컴퓨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는 시기였다.

 국가기관을 중심으로 한 컴퓨터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70년대 벽두부터는 학교와 은행에서도 각각 교육행정분야와 금융전산화를 위해 컴퓨터 도입이 잇따랐다.

 69년 서강대가 미국 스페리랜드(현 유니시스)사의 유니백 솔리드스테이트 80 기종을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을 계기로 한양대·서울대 등 각 대학의 컴퓨터 도입이 줄을 잇게 된다. 그러나 교육 커리큘럼이 마련돼 있지 않고 교재와 마인드의 부재로 실제 교육에 활용하지 못하는 진통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은 70년 숭실대학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자계산학과를 공과대학 안에 설치해 30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임으로써 개선된다.

 숭실대학의 전자계산학과 설립은 우리나라 대학의 컴퓨터 교육을 체계화시키는 시발점으로 자리잡았고 이후 중앙대·동국대·광운대·홍익대에서 학과개설이 뒤따랐다.

 이후 71년에는 대학예비고사 채점이 전산화됐으며 교육행정분야에서 컴퓨터가 도입됐고 중·고등학교 학생 배정업무에도 컴퓨터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대학들을 중심으로 한 교육정보화 열기에 못지 않게 업무 전산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던 곳은 은행권이었다. 은행들은 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컴퓨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높은 도입단가로 인해 컴퓨터를 보유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내 최초의 컴퓨터 용역기관으로 기록된 한국전자계산소(KCC)가 등장해 한국은행과 한일은행의 정기적금·환대사업부 용역작업에 컴퓨터를 활용하게 된다.

 산업현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로 70년대 경제부흥의 최선봉장으로 추앙받아온 컴퓨터는 80년대로 들어서면서 PC시대를 맞이한다.

 컴퓨터의 국산화 분위기가 거세지던 시기도 이때로 미니컴퓨터와 PC, 중대형컴퓨터용 한글 CRT 등 세가지 형태로 개발이 진행됐다. 미니컴퓨터는 동양전산기술(OCE)이 미국 디지털사의 핵심부품을 들여와 조립생산하는 형태로 전개됐고 PC는 금성전기 등이 중심이 돼 인텔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PC)를 개발해 국내 보급에 나섰다.

 특히 90년대 들어 486PC가 국내에 본격 공급되면서 PC산업은 본격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90년대 들어 국내 시장규모는 92년 91만대, 93년 1백29만대, 94년 1백49만대, 95년 1백65만대로 매년 1백만대를 돌파하면서 96년 초에는 국내 총 PC보급 누적 대수가 1천만대에 육박했다.

 이후 많은 변화 속에서 기술발전이 거듭돼 지난해에는 펜티엄Ⅱ 기종이 주력으로 급부상했고 국내 산업의 수출주도품목으로 등장했다. 또 핸드헬드(H)PC 등 새로운 이동컴퓨터시장이 태동하면서 국내 PC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중대형컴퓨터 분야에서도 80년대 유닉스 서버시장의 급신장세와 함께 국산 중형컴퓨터 개발 열기도 뜨거웠다.

 80년대 초반 정부의 강력한 컴퓨터 국산화시책에 힘입어 오리콤·삼성전자·금성반도체(현 LG정보통신)·동양정밀·삼성전관 등의 업체가 CRT와 모뎀 등의 제품을 우선적으로 국산화하는 형태로 전개됐다. 88년부터 개발이 본격화된 국산 주전산기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제통화기금(IMF) 이전까지만해도 지자체·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한 관수시장의 주전산시스템으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이규태기자 kt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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