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97)

 『실장과 차장 사이의 알력은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관여하지 않아요. 내가 형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차장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잖아요.』

 『이 차장은 너의 실력을 알아주고 있지만, 그러나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너를 외면할 거야. 지금 이 차장이 허 실장을 몰아내기 위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으니 너도 조심하란 말이야. 내가 회사에 남아 있을 때는 너를 챙겨줄 수 있지만, 내가 떠나면 너를 챙겨줄 사람은 없어. 허 실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기술실 엔지니어들 사이의 알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격렬했다.

 『이번 싸움의 발단은 양창성 선배가 책임지고 하던 통신제어장치의 실패에 있어. 양창성은 허 실장 사람이잖아. 이 차장은 그 실패의 책임을 허 실장에게 밀어붙이고 있고, 이 차장 패인 김문식, 강순익, 전태호가 동조하고 나섰어.』

 『뭘 어떻게 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답답하긴. 그 세 기술자들이 사표를 낼 조짐이란 말이야.』

 『통신제어장치의 실패는 양창성 선배 한 사람의 잘못도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 연구했던 것인데 누굴 탓해요?』

 당시만 해도 컴퓨터 전문가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컴퓨터 기술자가 회사를 떠나는 일은 그 사업을 중지해야 할 만큼 심각한 양상이었다. 더구나 컴퓨터 회사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그 인력은 부족했고, 스카우트 열풍도 대단히 심했다. 배용정 선배가 염려하는 것은 실장과 차장의 싸움에 휘말려서 쫓겨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세 선배들이 사표를 쓰려고 하는 것은 다른 회사로 옮기려는 뜻이 아닌가요?』

 『다른 회사로 옮기려는 데도 이유가 있지. 그러나 기술자들이 집단으로 사표를 쓰는 데는 배후에서 이 차장이 조종하고 있는 거야.』

 그날 술에 취한 배용정은 우리를 모두 데리고 사창가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여자친구들을 데려온 김용식과 문춘호가 따라갈 리가 없었고, 나는 애초에 그런 데를 싫어했기 때문에 그 혼자 갔다.

 배용정이 염려했던 기술실의 데모는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에 발생했다. 배용정은 월급을 타더니 군에 입영하기 일주일 전에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것이 마치 신호라도 된 것처럼 이 차장을 비롯해 세 사람의 기술자들이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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