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율급등에 따른 외환위기가 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제 30대 재벌에서부터 중견기업들에 이르기까지 도산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시대」에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기업환경하에서 각 기업의 총체적인 자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리하느냐가 앞으로 기업경쟁력의 향배를 가늠하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의 국가적 경제위기는 그동안 각 산업분야에서 누적돼온 「거품」에서 비롯됐으며 앞으로 기업이 필요한 거품제거란 바로 기업 경영방식의 합리화, 최적화, 슬림화, 다운사이징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혁신의 도구로 지난 90년대 초부터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전사적 자원관리(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은 이같은 「거품」을 제거하고 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하면서 국내 관련시장도 내년에 패키지 규모만 2천억여원을 형성할 정도로 급신장하고 있다.
당초 ERP는 서구기업들이 기업의 경영프로세스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계, 재무, 구매, 생산, 공급, 판매에 이르는 프로세스를 도식화한 후, 이를 적용한 기업경영의 합리화를 모색한 데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ERP는 기업경영합리화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는 기업업무재구축 즉, BPR라는 개념의 도입을 통해 본격화됐다. 지난 80년대에 기업의 경쟁력 강화운동 중 하나로 품질관리(QC)가 선풍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으며 90년대 들어서는 기업업무재구축(BPR)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기업경쟁력 확보운동이 발생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기업들은 모든 정보가 통합되고 동시다발적으로 검색, 처리되는 ERP시스템을 찾게 된 것이다.
ERP시스템 구축이 기업경영 전반에 미치는 효과는 실로 방대하다. 우선 기존에 1년에 한두번, 또는 분기별로 시행하던 총실사방식에서 탈피, 순환실사가 가능해짐에 따라 언제든지 투명한 회계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또 주기적으로 재고부족이나 과잉순환 등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게 돼 오류를 해결할 수도 있다.
기업은 이를 통해 생산시간의 손실을 최소화하게 되며 시스템상에서의 재고 정확도가 지속으로 개선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제조업체들은 제품가의 60∼70%를 차지하는 부품조달을 합리적으로 기획하고 긴급히 발생한 새로운 생산수주 상황에 실시간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
최신 컴퓨팅 기술환경이 제시하는 전자상거래기능 등이 ERP시스템의 운용환경을 지원하기도 한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5백대 기업과 우리나라의 20대 기업간의 제조원가를 따져본 결과, 선진국이 원가의 67%를 자재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87%라는 높은 원가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기술개발은 물론 유통, 물류의 혁신까지도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기업들도 이제 70, 80년대의 기업전산화 움직임인 경영정보시스템(MIS) 구축, 생산과 재고관리를 연계하는 관리기법인 자재소요량계획(MPRP Ⅰ), 제조재무계획과 판매계획간의 연동까지 고려한 생산자원계획(MRPⅡ) 등에 ERP개념을 도입,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는 다운사이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 2∼3년 삼성전자, 삼성전관, LG전자, LG-EDS시스템, 대우자동차, 흥아해운, 만도기계, 맥슨전자, 대림정보, 대한해운, 한국중공업, 기아중공업, 한화(무역부문), 대웅제약, 하이트론, 오리엔트시계, 스탠더드텔레콤 등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ERP구축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ERP는 한국기업들에 서서히 기업의 경영합리화를 위한 필수적인 도구로 각인되면서 산업합리화의 주요지원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해 가고 있는 것이다.
ERP는 특히 글로벌화시대에 외국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국내기업들의 해외법인들이 앞다퉈 도입해 성과를 올리고 있다. ERP를 도입하기 이전의 해외진출기업들은 전세계 각지로부터 부품을 조달하게 되는 입장에서 최소한 3개월 이전에 수요를 파악해서 주문을 내야 하는 상황을 겪었다. 이들 기업은 공통적으로 수요를 언제나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종종 예상치 못한 주문을 받게 되는 애로점을 느껴왔다.
기존의 MIS, MRP는 공장내부의 환경에서, 그나마 극히 제한적인 부분에서의 전산화를 이뤄온 탓에 이러한 문제에 즉시 대처하기 어려웠지만 새로운 기업경영 지원도구인 ERP시스템은 이 경우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전통적인 구매방식은 적절한 시기에 부품공급처를 찾지 않으면 부품공급의 지연, 또는 높은 가격에 구매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ERP시스템의 도입으로 우리의 현지기업들도 대외 거래처와의 구매상담은 물론 납품물량의 적기공급 문제까지도 해결하는 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대전자 영국공장, LG전자 중국공장, 대우자동차 폴란드 공장 등이 ERP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쳐 구매요청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체제를 갖췄으며 ERP는 글로벌경영을 지향하는 기업들의 성공적인 경영에 일조하고 있다.
ERP시스템은 부품조달 비용이나 고용비용절감, 또는 글로벌화 전략의 일환으로 해외에 진출한 이들 기업에 회계, 생산, 조달, 유통계획 등의 합리화를 지원함으로써 기업들에 더많은 수익과 물적 토대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ERP시스템의 도입확산이 경영의 합리화와 더불어 납품업체들과의 유대관계가 중시되던 기존의 제조업체 경영 틀을 붕괴시켜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ERP를 제대로 구축한 업체는 종래의 회계, 구매, 생산, 유통 관행이나 관념이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들 기업은 ERP시스템을 이용한 글로벌소싱에 따라 자재구입에 따르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폭을 넓힐 수도 있다. 이러한 기업의 정보화 과정은 과거에 단순히 품질좋은 제품만을 만들면 되던 시대에서, 제품수준은 물론 고품질 서비스가 부가되어야 하는 새로운 기업환경으로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ERP를 도입하려는 제조업체에 이러한 혁신적인 업무재구축이나 ERP도입이 그리 쉽지않은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시스템 구축비용이 소요되는 데다 구축기간 또한 만만치 않다.게다가 ERP시스템 구축에는 몇가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뒤따른다.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효율화하려는 BPR의 연장선상에 있는 ERP는 실행상에서도 다른 시스템 구축과 마찬가지로 시스템도입에 따른 준비작업이 사전에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은 국내기업들이 ERP시스템 도입시 요구되는 사항으로 △수행중인 개별 프로젝트와 ERP와의 연계성 확보 △명확한 도입개념 인식 △기존 시스템과의 인터페이스 문제 등을 꼽고 있다. 무엇보다 중견규모 이상의 우리 기업은 전사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프로젝트가 연간 20개에 달해 이를 위한 상호영향성을 심도있게 고려해야 한다.
둘째로 이 시스템 도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사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특별한 커스터마이징을 할 것인지, 아니면 ERP패키지를 중심으로 자사프로세스를 재구축할 것인지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같은 인식을 전사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기존 정보시스템과의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는 기술부문의 생산정보관리(PDM) 시스템이나 광속상거래(CALS), 전자상거래(EC), 전자문서교환(EDI) 등의 접목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외국제품을 통한 시스템 구축시에는 우리나라 거래관행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인사, 회계 부문과의 인터페이스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밖에 ERP도입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은 사전 프로젝트 기획과정에서 투자내용 등을 분석한 타당성 조사와 이에 따른 기대효과를 정해놓고 전담조직 및 수행체계를 확립해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
앞으로 과연 ERP시스템이 변화없이 살아남기 힘든 경제위기 속에서 기업생존의 수단으로 뿌리를 내릴 것인가. 혁신적인 기업경영합리화 노력을 부단히 요구하는 현재의 기업환경과 맞물려 상당기간 각광받을 것이라는 관련업계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재구 기자】
SW 많이 본 뉴스
-
1
모바일 주민등록증 전국 발급 개시…디지털 신분증 시대 도약
-
2
삼성SDS, 클라우드 새 판 짠다…'누리' 프로젝트 띄워
-
3
공공·민간 가리지 않고 사이버공격 기승…'디도스'·'크리덴셜 스터핑' 주의
-
4
삼성SDS, 병무청 행정 시스템 클라우드 전환 맡는다
-
5
제주도에 AI 특화 데이터센터 들어선다…바로AI, 구축 시동
-
6
전문가 50명, AI기본법 개정 머리 맞댄다
-
7
오픈AI, 코어위브와 클라우드 계약…MS와 결별 가속화되나
-
8
마케터, 생성형 AI 의존 심화…사용자 신뢰 잃을라
-
9
산·학·연 모여 양자 산업 지원…NIA, 양자 클러스터 기본계획 마련 착수
-
10
[뉴스줌인]경기 침체 속 오픈소스 다시 뜬다…IT서비스 기업 속속 프로젝트 추진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