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88)

밤이 깊어 있었다.

도로 한복판 맨홀에서는 아직도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있었지만 그 양이 많이 줄어 있었다.

승민은 다시 황금당 건물 뒤로 다가들었다. 여전히 어두웠고 자신이 깬 유리창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제 침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간단했다. 시간도 충분했다. 전철을 이용하여 동대문역 부근 철물점에 가서 구입한 도구로 창문의 창살을 자르고 침투하면 된다. 아무도 없고 무인경비시스템도 오프라인으로 되어 있다. 유리창이 깨져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지금이 유일무이한 기회. 침투한 후 귀중품이 금고에 들어있다면 그것은 그때 생각해보아도 된다.

깨진 유리창 안에서는 아직도 감지기가 붉은 빛으로 깜박이고 있었다. 승민은 그 감지기의 라인을 끊어버렸다. 만일 침투과정중에 무인경비시스템 회선이 회복되어 온라인으로 된다면 자신이 침투하는 것이 감지될지도 모른다. 온라인 상태로 되더라도 감지기를 장애상태로 놓아두고 싶은 것이다.

절단 과정이 끝난 후 승민은 딴전을 피우며 천천히 골목을 빠져 나왔다. 황금당 앞을 다시 살피기 위해서였다.

무겁게 내려진 셔터, 주먹보다도 더 큰 자물쇠가 변화 없이 그대로 있었다. 이제 지나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조금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급할 것도 없다. 승민은 맨홀에서 퍼올리는 물을 바라보며 계속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

다시 골목 안으로 접어들었다.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고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승민은 준비한 쇠톱을 꺼냈다.

다시 한번 주변을 살핀 다음 창살에 쇠톱을 갖다댔다.

만만치 않았다. 창살은 강했고 쇠톱은 약했다.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웬지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다.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톱질을 해나가면서 승민은 많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인생은 돈 아닌가. 생활도, 결혼도 다 돈 아닌가. 문학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승민은 이미 빠져버린 생각의 함정에서 허우적거리며 톱질을 해대고 있었다.

『움직이지마!』 그 소리와 동시에 승민의 머리로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정신을 잃을 만큼 강한 충격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승민은 땅에 쓰러지면서 많은 것들이 함께 쓰러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혜경과,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학교 학생들, 문우, 주변의 많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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