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21)

사내는 리모컨을 조작하여 화면을 바꾸었다. 방금전 화면 가득 보이던 침팬지의 모습이 사라지고 각종 데이터가 섹션별로 나타났다.

사내는 리모컨을 조작하여 데이터의 한 부분을 선택했다. 화면이 바뀌고, 바뀐 화면에는 좀더 구체적인 데이터들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듯 그 수치가 빠르게 변화되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채, 테라코타의 둔부를 어루만지며 화면으로 나타나는 데이터를 바라보던 사내의 시선이 화면의 한곳에서 정지했다. 빠르게 데이터의 값이 변화되고 있는 부분이었다.

사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시 리모컨을 조작하자 실내 한편에 놓여져 있던 프린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프린터 작동하는 소리에 짧게 끊어지는 디주리두 소리가 얹혔다. 잠깐이었다. 사내는 침대에서 내려서 프린터에서 출력된 데이터를 집어들었다. 천장의 화면에서는 각 부분의 데이터가 계속 변화하고 있었다.

FFE0783DC5CB100CAA00946284957CCB 3OF549DDC57C09AA267D65826739DDA0 0457D6C8DA310CA09B4957CB306BEEF5

사내는 16진수로 구성되어 길게 이어진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물었다. 그냥 입에 물었을 뿐, 불붙일 생각도 없이 출력된 자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사내가 컴퓨터 앞으로 다가섰다. 키보드 몇 개를 두들기자 이내 모니터에는 천장의 화면과 같은 형태의 데이터가 나타났다.

마우스로 모니터의 이것저것을 확인하던 사내가 다시 키보드 몇 개를 두들기자 화면이 바뀌었다. 오피스텔 바로 아래의 상황이 컴퓨터 화면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광화문 네거리 맨홀의 모습이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사내가 마우스를 조작하자 컴퓨터 화면이 변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네거리 쪽을 비추고 있던 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각층, 각 호실마다 연결되어 있는 도시가스 배관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었다.

경희궁. 서대문쪽 상황이 나타나고, 이어 재개발이 한창인 건물 뒤쪽의 상황이 비춰졌다.

잘 알고 있었다. 사내는 그 카메라를 통하여 창연오피스텔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늦은 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혜경.

혜경도 마찬가지였다. 혜경의 겉과 속, 모든 것을 사내는 그 카메라를 통하여 파악할 수 있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