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05)

창연오피스텔.

사내는 2020호실 앞에서 키 버튼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무슨 숫자를 누를 것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가는 다시 들었다.

생각을 굳힌 듯 사내는 버튼을 순식간에 눌러댔다. 문이 열리고, 퉁명스럽고 강한 목관(木棺)소리가 들려 왔다.

호주 원주민들의 고유한 악기.

알맞게 굵은 긴 나무를 개미굴 위에 올려놓아 개미로 하여금 구멍을 내게 하고, 그 입구를 다듬어 입에 대고 불던 호주 인디언들의 악기. 문자가 없던 자기 종족들에게 소식을 전하던 그 악기소리를 들으며 사내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직도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지만 맨홀의 불길은 더 이상 솟아오르지 않았다.

사내는 냉장고의 문을 열고 맥주 캔 하나를 꺼내 들었다.

딸깍.

알맞게 손아귀에 잡히는 맥주 캔은 언제나 상쾌한 느낌과 소리를 준다.

뿜어져 나오는 흰 거품을 긴 숨으로 들이킨 사내는 털썩, 침대에 몸을 던지고 리모컨을 끄집어냈다. 어떤 숫자를 누를 것인가. 문 앞에서처럼 잠깐동안 망설이다가는 빠르게 숫자를 눌러댔다.

천정.

대형 모니터 여러 개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천정.

리모컨의 버튼 하나를 다시 누르자 천정의 모니터에 일제히 화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마귀. 사마귀가 천천히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다.

사람의 팔과 매우 흡사한 두 앞다리를 가진 사마귀. 사마귀의 초록빛 날개는 근사한 연미복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일품인 것은 날카로운 삼각형의 얼굴, 그 모양새가 영악스런 인간을 빼 닮았다. 요리조리 용의주도하게 움직이는 얼굴 모양새가 인간을 가장 많이 닮았다.

하지만 여느 곤충들과는 달리 사마귀는 울지를 못한다. 여기에 사마귀의 비극성이 숨어있다. 그 원인 모를 침묵과 곤두세워진 앞다리를 보고 프랑스인들은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라고 했고, 모슬렘 교도들은 메카를 향하여 기도 드리는 신도라고 했다. 그러나 성스러운 사제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사마귀의 앞다리엔 날카로운 톱니바퀴가 촘촘히 붙어 있다.

숨겨진 톱니.

사마귀 톱니의 안쪽 날은 성능이 매우 뛰어나 먹이를 단숨에 베어 버린다. 그 숨겨진 톱니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잔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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