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55)

진기홍 옹은 요람일기의 지(地)권을 펼쳤다. 1904년 6월부터의 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6월 3일. 원산전보사 전보.

「하오 두시경에 문천(文川)읍 등지에서 일본군과 러시아군이 교전하여 러시아 군인 여섯명이 살해되었다고 함.

러시아 기병 38명이 어제 오전 12시경 영흥(永興)에 진주하고 지금은 고원(高原)에 도달했다고 하니, 러시아군이 원산에 입항하여 전보사로 침입할 기미가 보이면 부득불 잠시 피신코자 하오니 하촉 바람.」 통신원 지시.

「부득불 피신하게 되면 사안에 따라 통신원에서 조치하려니와 비록 부근 촌락이라도 시설하여 통신 사무는 정지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그쪽 형편을 듣는 대로 즉시 보고할 것.」 6월 4일. 함흥전보사 전보.

「음력 4월 17일(양력 5월 31일) 오전 3시경에 러시아군 31명이 함흥전보사에 진입하여 제반 통신용 장비를 몰수하고 소각하므로 전신기 1좌와 중요 문서를 다른 곳으로 숨겨두었더니, 러시아 군인이 관찰사를 찾아가 통신기와 문서를 은닉한 전보주사를 체포해 달라고 강요함. 순검과 포졸을 풀어 전보주사 등을 사방으로 수색하다가 직원 2명을 붙들어 무수히 두들겨패어 사경에 이르게 된지라, 할 수 없이 직원들이 기계 둔 데를 알려 주었는데 직원 2명은 금일 총살한다고 하니 생명을 어찌 부지할지 하촉 바람.」 통신원 지시.

「전보를 본즉 참으로 놀랍고 탄식할 일이라. 그 형편에 따라 조치할 터이나, 부근 마을 개인집에라도 통신기를 시설하여 통신 사무는 정지되지 않도록 하라.」 평양 전보사 전보 「평양 전보사의 사무실은 단 두 칸 방인데 이 두 칸 방을 일본군 전신대에서 또 빌려 있겠다고 하오니 할 수 없이 본사 남쪽에 방 3칸과 창고 3칸을 변변치 못하게나마 속히 건축하여 이 인원이 살며 물건도 쌓아두게 하려 하오니 하촉 바람.」 통신원 지시.

「귀사 관원이 현재 살고 있는 방은 빌려주지 말고 그네들이 거처할 방을 신축 또는 수리하여 제공토록 하고, 창고는 짓지 말되 이 비용은 윗선에 상세히 보고하여 변제토록 할 것.」

진기홍 옹은 요람일기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계속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통신장비를 감추었다고 사경을 헤맬 정도로 두들겨 맞고, 결국은 총살을 당해야 하는 당시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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