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강의 기본, 개화의 근원.」
진기홍 옹은 1883년 12월 21일자 한성순보(漢城旬報)의 내용을 떠올렸다. 전보론(電報論)이라는 7,000자 가량의 긴 기사였다.
「전보는 가장 신속(迅速)한 것이다. 세상에는 4가지 신속(神速)함이 있다는데, 광(光), 영(影), 성(聲), 기(氣)가 그것이다. 그러나 만리(萬里)를 가는 광, 영이 어디 있으며, 성도 만리에 미치지 못한다. 다만 기만이 이를 가능케 하는데, 전(電)이 즉 기이다」라고 시작하여 전기의 원리, 발전방법, 전신의 방법, 육지와 해선의 가설 요령, 전보의 효용, 각국의 현황 등을 설명한 내용이었다.
진기홍 옹은 신문기사 끝부분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므로 세계 만국에서는 부강(富强)의 기본(基本)이요, 개화(開化)의 근원(根源)으로 이를 다투어 설치하고 있다.」
「부강의 기본, 개화의 근원.」
진기홍 옹은 한성순보의 그 기사내용을 떠올릴 때마다 통신매체의 중요성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기본이 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하여 민주주의의 근원이 되는 통신. 그 개념은 현재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에 힘이 없었던 조선은 그 어느 신문물보다 일찍 도입이 시도된 전기통신을 안타깝게도 지키고 발전시키지 못했다.
김철영에 의해 요람일기가 쓰여질 당시 이미 일본은 통신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위해서는 통신권 장악이 그 무엇보다도 앞서야 한다는 전략으로 우리나라의 통신발달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그리고는 우리나라 안에서 독자적인 통신의 운영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요람일기가 쓰여지기 전부터 러시아나 청국이 전선 연접을 강청하고 불란서가 기상전보의 실시를 요구한 예도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전선의 해외연접을 요구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에 비하여 일본의 요구는 그들이 독자적으로 이 땅에서 통신사업 경영을 도모했다. 1894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청일전쟁 당시에 불법으로 가설한 군용전선을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대로 존속시켰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의 전신전화사업으로 확대시켰다.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에는 조선의 통신사업기관을 임의로 점거, 사용하다가 끝내는 뿌리째 약탈해가고 만 것이다.
그 생생한 기록이 바로 요람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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