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의기소침 병

李連園 삼성점보랜드 사장

가전유통의 극심한 불황으로 가전3사 전속 유통점들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들어 계절상품인 에어컨, 선풍기 정도만이 소폭의 판매신장을 했을 뿐 컬러TV, VCR, 전자레인지 등 주요 전자제품들은 대부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그 불똥이 전문대리점들을 강타하고 있다.

불황이 닥칠 때마다 독버섯처럼 번지는 과당경쟁도 일찍이 경계해야 할 선을 넘고 있다. 물, 불 가리지 않고 설쳐대는 이전투구식 출혈경쟁은 제한된 시장규모 탓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악순환이 가전 유통점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더구나 가전 메이커들의 불황탈출 전략이나 묘수를 지금으로선 기대하기가 힘든 형편이다. 지금 겪고 있는 불황의 위기는 서로 얽히고설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정도인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최근 주로 논의되고 있는 무이윤, 고인력난, 고비용 등은 우리 사회의 일반화된 추세이지만 3D업종으로 인식되고 있는 가전유통업의 경우 그 정도가 상당히 심각한 실정이다.

당면한 고비용, 고인력난, 저마진은 내용면에서 사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동안 거듭돼 온 가전업계의 현안이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숨막히게 하는 것은 가전유통 경영자들에게 불어닥친 불황의 터널이 아니라 언제인지도 모르게 몸에 배어버린 「의기소침病」 때문이다.

물론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긴 하지만 가격파괴형 신업태의 출현, TV 홈쇼핑의 영역침범, 외산 가전제품의 시장질서 혼란 등으로 전문유통점 체제는 심정적으로 크게 위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불항을 극복하려는 자구적 노력이 절실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위기상황일수록 구조요청(SOS)만 남발할 것이 아니라 호황기를 준비한다는 마음의 여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정적 늪에 빠져들다 보면 불황 속에 숨어 있는 소수의 열매까지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점점 늪의 깊이에 압도되어 끝내는 회생불능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어려운 때를 준비하고 이에 대비하여 철저한 고객만족 경영과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마케팅, 누수현상을 차단하는 꼼꼼한 관리전략 구사로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일궈내는 유통점들이 즐비하다는 점에서 불황을 벗어날 방향은 분명이 있어 보인다.

「백약이 무효」란 끝없는 불황에서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지레 의기소침하여 우리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열정까지 식어버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밤이 깊어지면 새벽이 가까운 것처럼 불황이 심해질수록 자신감을 갖고 정신적 열정을 뜨겁게 달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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