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파수 자원

해외건설 붐이 일던 80년대 초반쯤으로 기억한다. 하루는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 통신분야에 근무하고 있던 후배가 나를 찾아와 하소연을 했다. 해외에서 대형 토목공사를 수주해 계획을 수립 중인데 공사장이 워낙 넓게 산재돼 있어 원활한 공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사장간 통신문제가 선결돼야한다는 것이다.

마침 무선통신 분야에 종사하고 있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자체 무선통신망을 구축해 보라고 권했고 얼마 후에 다시 찾아온 후배는 상당히 난감한 모습으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현지 주무부처를 찾아가 공사장간 자체 무선통신망 구축계획을 설명하고주파수 허가를 요청했으나 사회주의 국가인 그 나라의 정책상 통신보안을 이유로 거절당했으며 급기야는 공사 시작부터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현지 공사책임자는 본사의 최고 책임자에게 「주파수를 구하지 못해 통신망 구축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더니 「전세계 시장을 다 뒤져서라도 당장 주파수를 사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요즘 너도나도 각종 무선통신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과열경쟁마저 일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

19세기말 헤르츠가 전파의 존재를 확인하고 마르코니의 무선전지 발명으로주파수 자원을 이용하는 무선통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수요의 급증에 따른 공급부족으로 주파수 자원의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무선통신이 통신보안문제 등으로 상당한 수모를 당하다시피 했으며, 관련 기술개발 역시 마치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하듯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전세계의 시샘과 부러움 속에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디지털 이동통신 상용화에 성공한 나라로, 전세계에서 이동통신서비스 성장이 가장 빠른 나라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무선통신의 발전이 마냥 장미빛 꿈만으로 가득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족한 주파수 자원, 사업자 증가에 따른 무선기지국 확보, 전파의 인체위해등 당면한 과제가 많다. 여러나라들이 주파수 이용 장기계획을 세워 미리미리 수요 예측에 따른 주파수 자원확보 및 개발을 추진 중이나 무선통신 수요의 급증에 비하면 가용할 수 있는 주파수 자원 이용기술은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내 PCS사업자로 선정된 업체들도 무선기지국 위치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선기지국의 공동이용이 모색되고 있으나 이또한 현실적으로 성사되기 어려운 방안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비스의 품질이기지국 위치 선정에 크게 좌우되는 상황에서 경쟁사업자간의 공동이용이란어떤 면에서는 적과의 동침인 셈이다. 우선 선행투자한 사업자들이 동조하지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그들이 이미 이용중인 기지국을 후발사업자들이 같이이용하기에는 수용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듯 엄청난 재화가치의 주파수 자원을 이용해 커다란 이익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산업 이면에는 음지에서 표나지 않게 이를 준비하기 위한어려운 몫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역할을 다하고 있는 주파수 자원 관련업무 종사자에게 한번쯤은 충심어린 격려와 감사를 보내야 할 것 같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