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캐논 감독의 "저지 드레드"는 SF액션영화이다. 이런 오락물을 나는 잘 즐기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란 이렇다. 보는 동안은 재미 있고 저런 장면을 도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감탄하기도 하지만 끝나면 허무맹랑하고, 아울러 그것을 보는 대가로 참아야 하는 백색 우월주의에 대한 블쾌감 때문이다. 최근 출시된 월트 디즈니의 "라이온 킹"도 그렇다. 너무도 잘 만들었지만 이 영화 만큼 지독하게 백색 중심의 사고를 보여주는 영화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대니 캐논 감독의 "저지 드레드"는 "AD 2000"이라는 영국 만화를 각색하여 만든 영화이다. "라이온 킹"은 아동용이다. 오락물.만화영화에 불과한 작품 들을 비평하는 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도 없지 않지만 이들 영화의 막대한 파급력을 생각하여 문제 제기를 하고자 한다.
"저지 드레드"는 미래의 뉴욕인 메가시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저지란 미래의 경찰을 뜻하는데, 이들 저지들의 임무는 슬럼가로 나가 치안을 유지하는 일이다. 메가시티는 첨단호화빌딩과 슬럼가로 양분되어 있는데, 빌딩은 "저지"들의 활동 무대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아울러 극도의 무정 부 상태에 놓여 있는 슬럼가의 폭력이 빌딩주민이 누리며 사는 평화를 조금도 교란시키지 못하는 이상한 풍경을 보게 된다. 빌딩과 슬럼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빌딩은 천국, 슬럼가는 지옥 거대한 수용소이다. 이 수용소 에 사는 사람들은 흑인이며, 황색인이며, 아랍인이다. 이들은 범죄와 폭력 중 어느 한 편에 가담해 있으며, 시민이라기보다는 감옥행 대기자들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 영화를 삐딱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라면, 천국엔 누가 사는가 하고 묻게 된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백색우월주의의 실체와 맞닥뜨리게될 것이다.
"저지 드레드"가 오락물의 고전들을 잡다하게 모방한 경우라면, "라이온 킹" 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그 전체의 구성을 빌려 왔다고 할 만하다.
라이온킹을 흉계로 죽이고 삼촌 사자가 왕국과 왕비를 모두 차지한다는 이같은 설정은 일찍이 "햄릿"이 보여준 바 있는 매우 섬쩍지근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라이온 킹"의 문제점은 색채에 있다. 라이온 킹이 다스릴 때의 세상은 칼라 다. 심바가 다스릴 때도 세상은 칼라다. 그러나 스칼렛이 다스리는 세상은 흑백이다. 이들의 갈기도 마찬가지다. 라이온 킹과 심바는 황금빛 깃털을 자랑하지만 라이온킹의 친동생인 스칼렛은 검은 갈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심바는 "해"로 표상되고 스칼렛은 "하이에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자로 나타난다. 백색과 흑색을 이 영화는 대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 사용된 색채는 상징이다. 라이온 킹과 심바는 백인의 지지 를 받아 지배자가 된 자이며, 스칼렛은 흑인의 지지를 받아 지배자가 되었음을 뜻한다. 아메리카에서 나날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해 가는 흑인에 대한 두려움을 이렇듯 색채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건 전개에 있어 탁월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기에 더욱 더, 이 영화의 광범위한 파급력이 두렵게 느껴지는 나의 이같은 우려가 단지 기우일 것인가. 채명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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