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중국 연변에서 "94 Korean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학회를 중국에 있는 우리 교포 학자들이 주최하였는데, 그곳에서 북한 학자 들도 만났다. 그런데 그 학술대회 제목이 학회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때까지마음에 걸렸고,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첫째, 모든 국제 학술대회는 제 몇회라는 말이 처음에 붙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이 학술대회는 94라고 연도만 표기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열리는 학회여서 제1회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다음에 다시 열리지 못하고 이것으로끝날지 모른다는 우려때문에 그냥 94라고 연도만 표기한 것 같다. 그것은 민간단체가 주관한 회의일지라도 3회 이상 계속된 예가 없는 남북한사이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Korean"이란 말이 걸린다. 주로 남한, 북한 그리고 중국의 우리 교포 들이 모여서 우리 말과 글을 컴퓨터로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인데 왜 굳이 "Korean"이란 영어가 학회이름에 등장해야만 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학회를 주최하는 중국 교포 입장에서 남북한 어느 쪽의 편도 들수없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Korean"이란 단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남한에 서는 우리말을 "한글"이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조선어"라고 하기 때문이다.
북한학자들은 "한글"이란 말의 "한"이 아래 으로 크다는 순수한 우리 말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잘 모르는 일반 북한 주민들이 "한국(한국) "에서 온 "한"인줄로 오해할 여지가 있어 "한글"이란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셋째, "컴퓨터"라는 단어가 거슬리는데, 지난 94년 문화체육부에서 발행한 전산기 용어 순화집을 보면, "전산기" 혹은 "셈틀"로 사용하기를 권유하고 있다. 반면 지난 92년 발행된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을 보면 "컴퓨터"를 "전자 계산기"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 것에서 주최측의 단어 선택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컴퓨터 "란 외래어도 남한에서는 "컴퓨터", 북한에서는 "콤퓨터"로 표기하고 있으며 중국 교포사회에서는 "컴퓨터"라고 표기하여 사용하고 있다.
넷째, 그 다음에 나오는 단어가 "국제학술대회"인데, 이 단어에도 할 말이많다. 사실 국제학술대회치고 세계에서 유래없던 현상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것은첫째 주최측의 자랑처럼 통역없이 전 과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참석자들이남한, 북한, 중국 등 여러나라 국적을 가졌으나 개회사부터 사회 논문발표, 질문에 이르기까지 전혀 통역없이 완벽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또 세종대왕이 제정한 우리말과 글의 처리라는 하나의 주제로 토론하 고논의하는 국제회의였다. 그리고 참석자들이 아침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노래를 같이부르며 춤도 같이 추고,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였으니 국제학술대회 라는 말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용어 통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때 어떤 참석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휘 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꼭 남북한이 통일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그이야기를 들으니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통일만 외쳐대다가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잊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지 않아도서로의 체제가 달라 잃어버린 말들이 많이 있는데, 구태여 하나로 통일시켜어 휘를 줄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예로 북한에서는 "동무", 남한에서는 "한글"같은 좋은 말들이 제각각 사용되고 있으나 앞으로 통일된후에는 이런 말들이 양쪽에서 계속 사용될 수 있지 않겠는가.
헤어질때 다음 해에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였고 8월은 너무 더우니 날씨 좋은 5월에 만나자고까지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으니 아마 올해도 만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제2회 한글 정보처리 학술대회"라는 제목이 붙은 안내장이 날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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