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은 긴장의 연속이다. 초음파, 내시경 등 다양한 검사를 받다 보면 정신, 육체적으로 지치기 마련이다. 엑스선 촬영 검사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촬영 기기 앞에서 잠시 숨을 들이켠 채 서있으면 그만이다. 몸속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렇게 고마운 엑스선은 거의 100년 이상 인류의 건강은 물론이고 과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엑스선은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뢴트겐은 1895년, 꼭 이맘때인 11월 8일 엑스선의 존재를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엑스선의 발견은 주파수를 발견한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와도 연관돼 있다. 헤르츠는 1892년 음극선이 얇은 금박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발견했다. 헤르츠는 그의 제자인 필립 레나르트에게 이 실험을 물려줬다. 레나르트는 음극선관의 한쪽 끝에 얇은 알루미늄 판을 대고, 여기에 음극선을 쐈다. 이때 판을 통과해서 나오는 광선의 성질을 다양한 기체 속에서 관찰했다.
뢴트겐도 실험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레나르트에게 방법을 배워 같은 실험에 나섰다. 뢴트겐은 음극선이 금속을 통과해서 발생한 광선의 투과성을 확인하기 위해 관을 검은색 종이로 감쌌다. 관속에서는 여전히 음극선이 알루미늄판을 통과했지만 이 광선이 외부로 나오는지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뢴트겐은 실험 중 책상 위에 놓인 백금시안화화바륨 종이에 이상한 검은 선이 생긴 것을 관찰했다. 그가 사용한 관에서 음극선이 관의 금속벽에 빠른 속도로 충돌하면서 엑스선이 발생했고, 이 광선이 관을 뚫고 나와 백금시안화바륨을 감광시킨 것이다. 뢴트겐은 이를 '알 수 없다'는 의미의 'X'를 사용, 엑스선이라고 불렀다.
뢴트겐은 엑스선이 물체를 투과, 이를 감광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의 부인을 실험실로 불러 그녀의 손을 엑스선으로 찍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뼈가 나온 사진을 보고 그의 부인은 “나의 죽음을 보았다”라고 할 정도로 놀랐다고 전해진다.
뢴트겐은 그간의 실험을 정리해서 뷔르츠부르크 물리·의학 학회지에 '새로운 종류의 광선에 관해서'라는 논문을 접수시켰다.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뢴트겐은 X선을 발견하고 특허를 내서 큰 돈을 벌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X선은 자신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을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온 인류가 공유해야 한다”며 특허 신청을 하지 않았다.
과학사에선 엑스선이 발견된 1895년을 중요 분기점으로 본다. 뢴트겐이 엑스선을 발견한 뒤 이듬해 프랑스의 베크렐이 우라늄에서 최초로 방사선을 발견했다. 1897년 영국의 J.J 톰슨이 음극선 전하량과 질량의 비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엑스선 발견과 이후 연구는 20세기 상대성이론이 출현하는 계기가 됐다. 뢴트겐 또한 이 발견으로 1901년 첫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엑스선은 이후 DNA 구조를 밝히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데 X선결정학 기술이 활용됐다. 엑스선이 결정 내 분자 구조에 의해 어떻게 회절하는지 기록해 결정의 구조를 알아냈다. 1952년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엑스선 영상 결과로 부터 DNA는 바깥쪽에 인산을 가지며 대칭적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나선형 구조로 이뤄졌다고 했다. 이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X선 회절사진을 해석해 DNA 분자구조를 밝히고 그 공로로 1962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여담이지만 뢴트겐에게 실험 방법을 알려준 레나르트가 금속판을 투과해서 나오는 음극선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반대편에 감광판을 설치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레나르트가 엑스선의 발견자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까.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