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0여명에 이르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소속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의 상시·지속 업무 기준을 담은 정부 가이드라인이 조만간 나온다.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보다 구체성과 강도가 높을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 출연연은 가이드라인에 맞춰 전환 규모와 일정을 확정해야 한다. 비정규직 외에 2700여명에 이르는 간접 고용 인력은 직접 고용하거나 자회사를 설립한다. 고용 안정에 필요한 재원을 당분간 수탁 과제비에 의존하는 만큼 앞으로 안정된 재원 확보가 과제다.
31일 정부와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달 중에 발표한다. 가이드라인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관 25개 출연연에 하달된다. 출연연은 가이드라인에 맞춰 전환심사위원회를 가동, 정규직 전환 범위와 일정 등을 확정한다.
과기정통부 가이드라인은 기존의 고용부 가이드라인보다 구체화됐다. 고용부 가이드라인은 '연중 9개월 이상 지속, 향후 2년 이상 지속 예상' 업무를 상시·지속 업무로 보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골자다. 과거 재계약 선례가 있는 업무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과기정통부 가이드라인은 과거 재계약 선례가 있는 직무까지 상시·지속 업무에 포함할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연속성이 인정되는 만큼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지속이 예상된다는 논리다. 상시·지속 업무에서 제외하는 직무도 명시한다. 특수 목적으로 정년 후 재고용한 인력, 단기 인턴 등은 상시·지속 업무로 보기 어렵다.
문제는 재원이다. 회계연도 중간에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는 인력은 당분간 '정원(TO) 외 정규직'이 된다. 이 때문에 이들 인건비는 고정 인건비 항목이 아니라 출연연이 민간이나 정부로부터 수주한 과제비(직접비)에서 충당한다. 과제 연속성이 흔들리면 인건비 재원까지 흔들리는 구조다. 과제비 가운데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진다. 전제 연구개발(R&D) 과제비가 늘지 않는다면 출연연의 부담이 커진다.
이 때문에 출연연 현장에서는 기관별로 정규직 전환 폭이 크게 갈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예산 가운데 수탁 과제비 비중이 크면 그만큼 전환 여력이 생긴다. 반대로 수탁 과제비 비중이 작은 기관은 투입할 재원이 부족하다. 인건비 상승을 감당하는 것도 출연연 입장에선 부담이다.
내년 정부 연구개발(R&D)과 과기정통부 예산 증가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출연연의 정규직 전환 예산이 별도로 편성되지 않으면 기존 예산에서 메워야 한다. 가뜩이나 부족한 R&D 예산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인건비로 사용돼야 한다. 인건비 이외에 소요되는 경비는 구체적인 통계도 없다.
연구계 관계자는 “잔여 TO를 초과하는 정규직 전환 인력의 인건비는 과제비에서 충당해야 한다”면서 “과제비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비 비중이 줄어들 수 있어 완전한 대책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력은 앞으로 정식 TO로 잡힌다. 지금도 비정규직 인건비가 과제비에서 지출되고 있는 만큼 비용 항목만 인건비로 바꿔 잡는 차이라는 설명이다.
동종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줄여 왔기 때문에 인건비 상승 폭도 적을 것으로 봤다. 과기정통부는 출연연의 동종 업무 간 임금 격차가 5~10% 수준으로 좁혀진 것으로 파악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비정규직 인건비도 과제 참여율에 따라 직접비에서 지급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 재원 소요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과제 수주를 예측할 수 있다면 장기로 볼 때 큰 문제가 아니다”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역시 꾸준히 좁혀 왔기 때문에 임금 상승 폭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이후 시간이 흐르면 연봉 인상 등에 따라 비용 부담이 증가한다. 정규직 전환 초기에는 인건비 인상 폭이 크지 않다 하더라도 중장기로는 별도의 재원 마련 대책이 필요하다. 여기에 인건비 이외에 정규직 전환에 따른 기타 경비 등도 고려해야 한다.
경비·환경미화 인력의 간접 고용 해소는 기관별 편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과기정통부도 이 문제 해법을 사실상 기관 자율에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고용과 자회사 설립 가운데 가능한 안을 노사 합의로 채택할 것을 권고한다. 간접 고용 인력이 많은 기관은 자회사 설립, 적은 기관은 직고용 전환을 택할 공산이 크다. 혼재 국면에서 노-사·노-노 갈등 우려도 있다.
연구계 관계자는 “간접 고용 해소는 자회사 설립, 직고용 전환 둘 가운데 기관이 알아서 택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면서 “기관 사정과 노·사 관계가 제각각이어서 실제 후속 조치에 들어가면 혼재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