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플랫폼톡] AI 시대의 규제합리화, '사후 대응'에서 '사전 탐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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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코딧 대표

국가 규제개혁 체계가 28년 만에 전면 개편됐다.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의 출범이다. 지난 4월 15일 첫 전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은 공공이 민간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첨단산업 분야에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는 등 과감하면서도 신중한 시스템 개선을 주문했다. 민간의 혁신 속도에 맞춰 규제를 전략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획일적 사후 대응'에서 '유연한 사전 정비'로의 전환, 즉 민원·건의 중심 사후 정비 방식에서 벗어나 한 발 앞선 규제합리화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반 규제 내비게이터'로 규제 정보를 사전에 통합·분석하고, '미래규제 지도'로 신산업 분야의 단계별 규제 이슈를 예측하겠다는 접근은 기업이 벽에 부딪힌 뒤에야 정책이 움직이던 기존 한계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는 글로벌 흐름과도 일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규제정책전망 보고서를 통해 사전적·증거 기반 규제 설계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필자가 OECD에서 정책 분석가로 근무하며 직접 목도한 것도 이 지점이다. 규제 선진국의 조건은 규제의 양이 아니라, 규제 정보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하고 이를 정책 설계에 환류하느냐에 있었다. 한국이 이제 그 전환점에 서 있다.

민간에서는 이미 자체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해왔다. 필자가 국제기구를 떠나 코딧을 창업한 것도, 정책 데이터의 잠재력과 현장의 괴리를 동시에 체감했기 때문이다. 코딧의 AI 정책 에이전트 '챗코딧'은 규제가 자사에 미치는 영향을 빠르게 파악하려는 기업들의 수요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챗코딧은 한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6개국의 규제 데이터를 입법 논의 초기 단계부터 분석해 규제 변화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고, 정책 간 흐름과 맥락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기업 맞춤형 인사이트와 시기별 액션 플랜을 제시한다. 규제가 만들어진 후에야 대응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논의 단계에서부터 전략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의 활용도가 높다. AI 기반 규제 분석은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실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성과가 정부의 규제 정비에도 반영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민간과의 적극적인 협업이다. AI 기반 규제 분석은 단순한 정보 통합이 아니라 데이터를 실제 의사결정으로 연결하는 고도화된 작업이다. 이 분야에서 오랜 기간 도메인 지식과 기술력을 축적해온 거브테크 기업들이 이미 존재하며, 정부는 현장에서 검증된 민간의 경험과 인프라를 정책 설계에 연결하는 개방형 협업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고품질·고맥락 데이터의 공개다. 공공데이터 개방은 확대되고 있지만 형식 불일치, 갱신 지연 등 품질 문제는 여전히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접근이 제한되는 데이터가 많다. AI 기반 규제 분석이 실효성을 갖추려면 데이터를 API 등 표준화된 방식으로 제공하고, 회의록 등 의사결정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비정형 데이터의 개방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셋째, 분석 결과의 정책 환류다. 데이터를 열고 민간과 협업해 규제를 분석하더라도, 그 결과가 실제 정책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반감된다. AI 기반 분석이 도출한 규제 개선 과제가 관계 부처의 정비 의제로 연결되고, 이행 여부가 추적·공개되는 체계적 환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결국 AI 시대 규제합리화는 민관협력과 AI 친화적 데이터 인프라, 그리고 투명한 정책 환류 구조에 달려있다. 이러한 요소가 모두 갖춰질 때 비로소 OECD가 권고하는 '규제 거버넌스의 디지털 전환'이 작동할 수 있다. 새롭게 탄생한 규제합리화위원회가 이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를 기대한다.

정지은 코딧 대표 june@thecod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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