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팀이 기초과학 연구가 인공지능(AI) 시대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인 전력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포스텍(POSTECH)은 박경덕 물리학과·반도체공학과·융합대학원·반도체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2차원 반도체의 '엑시톤(exciton)' 이동을 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간에서 정밀하게 제어하고, 이를 기존 대비 최대 8300%까지 증폭시키는 새로운 물리 현상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현재 반도체는 전자의 흐름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한다. 하지만 전자가 이동할수록 필연적으로 열이 발생하고, 이는 곧 에너지 손실과 성능 저하로 이어진다. 실제로 AI 데이터센터는 도시 하나에 맞먹는 전력을 소비할 정도로 에너지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엑시톤'이다. 엑시톤은 반도체 내부에서 빛과 전자의 성질이 결합된 입자로,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이동 과정에서 열 발생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차세대 초저전력 정보 전달 매개체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엑시톤을 원하는 방식으로 정밀하게 제어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 실제 소자 응용에 큰 제약이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빛과 전기를 나노미터 수준에서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나노 공진 분광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빛과 전기장이 최첨단 반도체 공정의 최소 선폭 정도의 초미세 공간에 모이면서, 반도체 내부의 '에너지 지형'을 나노 공간에서 정밀하게 제어하고 동시에 관측할 수 있다.
이 방법을 통해 특정 영역에 엑시톤을 집중시켰고, 그 과정에서 기존 이론과는 다른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좁은 공간에 모인 엑시톤들이 서로 밀어내며, 오히려 더 빠르고 강하게 바깥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연구팀은 이 현상이 단순히 엑시톤의 개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엑시톤이 얼마나 가파르게 몰려 있는지를 나타내는 '밀도 기울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기존 방식 대비 최대 8300%에 달하는 엑시톤 확산 증폭 효과를 입증했다.

또 이 현상은 전압만으로 실시간 제어가 가능했다. 스위치를 켜고 끄듯, 전압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엑시톤의 이동 방향과 세기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 향후 반도체 칩 내부에서 정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연구는 차세대 반도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 분야로의 확장 가능성도 제시한다. AI 데이터센터의 초저전력 인터커넥트, 고효율 광전자 소자, 차세대 태양전지 등에서 엑시톤 흐름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형우 박사와 문태영 씨는 “이번 연구는 나노미터 공간에서 엑시톤의 이동을 직접 생성하고 관측한 첫 사례로, 기존에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이동 메커니즘을 확인했다”며 “엑시톤 기반 소자 설계의 핵심 원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박경덕 교수는 “기초물리 연구를 통해 산업기술 적용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며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향후 저전력 AI 반도체와 신개념 광소자 융합 기술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지속적인 기초연구 지원을 통해 수행된 이번 연구성과는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Nature Materials)'에 게재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