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AI 기본법 시대, K콘텐츠 미래는 '신뢰'와 '기준'에 달렸다

Photo Image
한선옥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영상제작과 교수

인공지능(AI)은 창작의 보조 도구를 넘어 영상 산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거대한 파도가 됐다. 창작 과정 면에서 기획부터 이미지 생성, 편집, 색 보정, 음향에 이르기까지, 장르적으로도 게임, 음악, 광고, 애니·웹툰에 이어 영화, 드라마 등 K콘텐츠의 핵심에 이르기까지 AI는 이제 창작 현장의 '기본 도구'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규제의 속도 조절에 나선 유럽연합(EU)이나 미국 대비, 자국의 AI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도 지난달 22일 세계 최초로 'AI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대결해야 하는 'K콘텐츠' 산업은 AI 사용 여부의 표기를 넘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충족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K콘텐츠가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는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는 지난해 8월 제작 지침을 통해 '생성형 AI'를 귀중한 크리에이티브 보조 수단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파트너 제작자'에게 요구하는 투명성은 단순히 화면에 'AI 사용' 표시를 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제작 과정에서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 입력 데이터가 모델 학습에 재사용되지 않도록 보호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나 작가 등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했는지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신뢰'의 기록을 요구하고 있다.

생성형 AI 툴의 비약적인 발전은 기존 한계로 지적되던 '이질감'이나 '일관성 유지의 어려움'을 대부분 극복하고 있다. 진짜 문제는 이 기술을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태도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중심에 선 K콘텐츠가 진정으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콘텐츠가 되려면, '인간 중심의 기술 활용'이 '알리바이'로 제공돼야 한다. 무분별하게 생성형 AI를 사용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방식은 오히려 대중의 반감을 산다. 실례로 한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에서 시각적 확장을 위해 AI를 전면에 내세웠을 때, 글로벌 팬덤의 80%가 '아티스트의 노력을 도둑질한다'라거나 '영혼이 없다'라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소비자는 이제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다, 제작자가 어떤 명분으로 기술을 사용하며 창작자의 가치를 어떻게 존중하는지를 묻고 있다.

교육 현장에도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이제 콘텐츠 창작 교육은 특정 AI 툴의 숙련을 넘어,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인간의 안목으로 선별하고 편집하는 '큐레이션 능력'과 더불어 법적·윤리적 감수성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창작자들은 자신의 창작 행위가 특정 아티스트의 화풍을 약탈하는 행위가 되지 않도록 '프롬프트 가이드라인'을 구축하고 제작 이력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결국 'AI 기본법'은 K콘텐츠 산업의 족쇄가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통용될 수 있는 '책임 있는 창작'을 증명할 시험대가 될 것이다. 기술을 앞세운 속도 경쟁에서 한 걸음 나아가, 세계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신뢰와 기준을 설계해야 한다. AI 기본법 계도 기간을 통해 현실적인 규제 체계의 구축과 함께, K콘텐츠 산업계와 창작자들 또한 세계 시장이 요구하는 '신뢰와 투명성'의 기준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선옥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영상제작과 교수 indigohan@dima.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