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수일가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 장기간 은폐해 온 DB그룹의 '위장계열사'가 드러났다. 재단을 방패로 삼아 대기업집단 규제를 피해온 정황이 확인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DB의 동일인 김준기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제출하면서 동곡사회복지재단과 산하 회사 15곳을 소속 현황에서 누락한 혐의다. 공정위는 공소시효를 고려해 2021~2025년 지정자료 허위제출 행위를 고발 대상으로 특정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DB 측은 최소 2010년부터 재단과 재단회사들을 총수일가의 지배력 유지와 사익 추구에 활용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2016년부터는 재단회사 관리를 전담하는 직위를 신설하고 DB 임원 출신 인사를 배치해 조직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한 정황이 확인됐다. 공정위는 이 시점 이후 재단회사들이 실질적인 계열사로 기능했다고 판단했다.
자금 흐름에서는 재단회사들이 계열사 지원 창구 역할을 한 사례가 포착됐다. 2010년 디비하이텍의 경영 여건이 악화됐을 당시 삼동흥산과 빌텍은 자체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금융계열사 차입을 통해 디비하이텍의 부동산을 매수했다. 해당 부동산은 이후 DB 계열사에 임대·재매각되며 유동성 부담을 완화하는 데 활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총수 개인을 중심으로 한 자금 이동도 확인됐다. 2021년 김준기 회장은 빌텍으로부터 220억원을 대여받았고, 이듬해 해당 금액을 상환했다. 그러나 빌텍은 상환 직후 동일한 금액을 투입해 디비하이텍 주식을 매입했다. 공정위는 디비하이텍에서 나온 자금이 재단회사를 거쳐 다시 디비하이텍으로 되돌아간 구조로 판단했다.

지배구조 유지를 위한 지분 관리에도 재단회사들이 활용됐다. 2022년 디비아이엔씨가 디비하이텍 지분 일부 매각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내부지분율 하락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삼동흥산과 빌텍의 지분 취득이 논의됐고, 이후 두 회사는 실제로 디비하이텍 지분을 매입했다.
공정위는 이러한 사례들을 종합해 재단회사들이 독립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내부적으로는 계열사처럼 관리하면서도 외부에는 비계열로 은폐해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제도와 각종 기업집단 규제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내부 문서에는 재단회사들이 그룹 자산·인사 관리 대상에 포함돼 있었지만, 대외 배포 자료에서는 삭제하거나 별도 표시하라는 지시가 담겨 있었던 점도 확인됐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지분율이 아닌 동일인 측의 지배적 영향력 행사 여부를 중심으로 계열관계를 판단한 사례로 평가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의 근간”이라며 “지정자료 허위제출 등 위법행위가 확인될 경우 엄중히 제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