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퀄컴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와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 반도체 시장을 잠식하면서 국내 기업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퀄컴이 차지한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 국산화를 추진하던 국내 반도체 기업의 동력도 약화되고 있다.
1일 시장조사업체 욜그룹에 따르면 퀄컴은 지난해 ADAS용 반도체 고객으로 세계 20개 완성차 제조사를 확보했다. 현대차·토요타·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그룹에는 사실상 퀄컴 ADAS 반도체가 모두 들어간다. 지난 2020년 차량용 반도체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제품군을 확대한지 5년만의 성과다.
IVI용 반도체 역시 이미 시장 점유율 50% 수준으로 1위에 올라섰다. IVI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강호였던 르네사스와 NXP를 앞질렀다.
퀄컴은 고급 차량용 칩을 먼저 공급, 시스템을 검증받은 뒤 하위 모델에 확대 적용하는 전략을 취한다. 동일한 시스템 기반이라 완성차 제조사가 전장 아키텍처를 설계하는데 이점을 제공한다. 이에 고객들은 전장 설계와 소프트웨어 관리 이원화 부담을 피하기 위해 퀄컴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여왔다.
지금까지 IVI와 ADAS는 차급별로 서로 다른 반도체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두 기능을 하나로 묶는 흐름이 빨라지고 있어 퀄컴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회계연도 기준 2025년 퀄컴 자동차 분야 매출은 40억달러(약 5조8500억원)다. 2029년 80억달러로 2배 성장을 목표로 내세웠다.
퀄컴 비중 확대는 국내 기업에 부정적이다. 기술 진입장벽이 낮은 하위 모델부터 상위 모델로 국산화를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퀄컴의 '톱 다운' 전략에 대응이 어려워졌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업계 맏형인 텔레칩스도 직격탄을 맞았다. 텔레칩스는 올해 IVI 기준 현대차그룹 내 점유율을 20% 밑으로 예상했다. 과거 2018년 80% 안팎이던 점유율이 4분의 1 토막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다른 차량용 팹리스 업체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넥스트칩은 복수 완성차 제조사와 프로젝트 지연으로 지난해 자본잠식에 빠지면서 해소를 위해 수차례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지난 2022년 현대차그룹 투자를 받은 보스반도체는 시장 경쟁이 격화되자 맞춤형 주문형반도체(ASIC)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재무 상태가 악화되서다.
업계에서는 열악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설계(팹리스) 산업 육성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계 판매량 3위 완성차 제조사인 현대차그룹을 보유한 한국이지만,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의 존재감은 여전히 미미해서다.
단순 세제 혜택이나 연구개발(R&D) 지원을 넘어 팹리스, 부품사, 완성차 제조사가 참여하는 칩 국산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완성차 제조사의 인력·비용 부담을 일부 완화해 반도체 공급 이원화를 유도하는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규민 한국팹리스산업협회 정책연구본부장은 “중국의 경우에는 2027년 차량용 반도체 100% 국산화를 목표로 자국 반도체를 채택한 완성차 제조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까지 펼치는 상황”이라며 “단기간 고사양 칩을 대체할 순 없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국산화 기반을 구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