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암 정복의 새 열쇠, 오가노이드 이용 신약개발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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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희 한국화학연구원 신약정보기술연구센터 선임연구원

2025년, 일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는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하게 하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다양한 암세포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이 말은 암 연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로 다가온다. 암의 많은 특성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성을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깨달음 말이다.

오랜 시간 암을 연구하며 암세포의 행동이 인간의 모습과 닮았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인류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진화와 자연선택을 통해 살아남았듯, 암세포 역시 생존과 성장을 위해 유사한 전략을 취한다. 살아남은 암세포는 우연이 아니라, 다양한 생체 작용에 적응한 결과물이다.

인간이 유아기부터 다양한 관계를 통해 성장하듯, 암세포도 다양한 세포로 구성되며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악성으로 발전한다. 암이 오랜 시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해 온 이유는 결국 장기 실패(organ failure) 때문이다. 정교한 공동작용으로 유지되는 우리 장기에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암세포가 축적되면, 정상 조직을 잠식하며 본래 기능을 제한한다.

물론 인체에는 정교한 방어 시스템이 존재한다. DNA 손상 시 복구 기전이 작동하고, 회복 불가능한 세포는 '예정된 죽음(programmed cell death)'을 통해 제거되며, 이마저 실패하면 면역세포가 감시자로 나선다. 하나의 암세포가 이 모든 방어 체계를 뚫고 암 덩어리로 성장하는 과정은 암세포 입장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실제 가족력이 중요한 대장암도 40세가 넘어야 진단받기 시작하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암세포는 수많은 진화와 자연선택을 거치며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세포들로 분화되며, 상호관계가 더 강화된다.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암 정복 선언 이후, 전 세계 과학자들이 집중적으로 연구했지만 여전히 암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다양한 암세포의 특징에 단편적으로 혼돈되지 않고, 복잡성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입체적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이런 암의 특성을 갖춘 모델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네덜란드 우트레히트대(2009년 당시 소속)의 클레버스 한스 교수팀이 성체 줄기세포의 3차원 배양을 통해 체내 장기와 유사한 오가노이드를 개발했고, 2015년에는 환자 대장암 조직과 유사한 암 오가노이드를 처음 만들어냈다.

이는 기존 모델 시스템 한계인 암의 다양성과 복잡성 결여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 시스템이다. 특히 2010년 중반 이후 미국 암학회(AACR)는 기존 연구 시스템 한계를 지적하며 실제 암 환자의 특징이 반영된 오가노이드 연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2025년 4월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동물실험을 줄이고 인간 생체 시스템 기반 '대체 실험법' 중심으로 규제 체계를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실제 인체처럼 기능하는 오가노이드가 신약 개발 플랫폼의 새로운 표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암과 싸우기 위해 1세대 세포 독성 항암제부터 2세대 표적치료제, 3세대 면역항암제까지 개발했다. 하지만 현재 암은 여전히 우리를 위협한다. 이제는 새로운 신약 못지않게, 올바른 시스템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지 근본적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로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화학연구원은 암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온전히 담아낸 오가노이드 기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암세포들의 혼돈스러운 특징들을 혼연일체로 이해할 수 있는 이 기술이야말로, 인류가 꿈꾸는 암 정복의 현실적 돌파구가 될 것이다.

조용희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 y-hcho@kr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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