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성장촉진형' 중소기업 정책에 바란다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각종 지원예산 규모도 크고, 지원 프로그램도 촘촘하다. 반면 한국 경제는 최근 수년간 OECD 평균 성장률을 밑돈다. 물론 경제의 저성장을 중소기업이나 중소기업 정책만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저성장은 인구 감소와 생산성 둔화, 투자 위축 등 구조적 요인이 대기업을 비롯한 건설과 소비 등 여러 부문에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다만 중소기업이 기업 수와 고용의 면에서 8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중소기업 정책이 경제의 회복과 성장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중요한 정책적 질문이다.

그간 중소기업 정책은 분명한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은행과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발표 등을 종합하면 정책 지원은 매출 확대와 고용 유지, 폐업 방지 효과가 확인되고, 지원을 받은 기업은 받지 못한 기업보다 성장 가능성과 고성장 전환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다. 정부 지원은 중소기업의 생존과 성장 가능성을 함께 끌어올린다. 문제는 이 성과가 경제 전반의 성장 동력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정책 지원의 효과는 기업의 초기 단계에서 뚜렷하다. 그러나 기업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지원은 줄고 규제와 부담은 커진다. 성장할수록 불리해지는 구조 속에서 기업은 성장이 아니라 현상 유지를 선택한다. 정책이 성장의 연속성을 뒷받침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자원의 배분 방식도 고민이 필요하다. 생산성이 낮은 기업과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같은 정책의 틀 안에 놓으면, 성장 촉진 효과는 희석된다. 정책 지원이 고성장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에도, 그 효과가 반복·누적되지 않으면 성장의 총량은 제한된다. 이는 정책이 실패하지 않는 것을 넘어 효과를 키우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정책의 무게중심을 점검할 시점이다. 성장의 여력이 줄고 재정의 제약이 심화되는 환경에서 '더 많은 기업에, 더 많은 지원'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부가 혁신경제와 성장률 제고를 국정 목표로 제시한 이상, 중소기업 정책 역시 '성장에 어떻게 기여하고 이를 극대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는 저성장의 국면에서 중소기업 정책이 중요하고도 유효한 경제정책이 되기 위해 불가피하게 짊어져야 할 과제이다.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중소기업 정책을 목표에 따라 성장과 안정, 생산성과 전환 등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성과지표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장정책은 스케일업과 고성장 전환으로, 안정정책은 고용 유지와 폐업 관리로 평가되어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의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 성장 과정에서 정책과 제도의 연속성이 유지되지 않으면, 성장 유인은 작동하기 어렵다. 셋째, AI와 디지털 전환은 개별 기업 보조금 뿐만 아니라 생산성 인프라라는 관점에서도 접근해야 한다. 표준화된 데이터와 실증 환경을 공공 지역 인프라로 구축해 성장 효과가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정책금융은 대출의 양이 아니라 초기 위험을 흡수해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2026년 중소벤처기업부 업무보고가 성장촉진에 분명한 방점을 두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간 판데믹과 공급망 변동의 파고속에서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경제의 완충판 역할을 해 왔다면, 이제는 저마다 치고 달리는 글로벌 기업환경 속에서 새로운 힘으로 달려 나갈 우리의 선수를 키우고, 경제의 하부와 허리를 강하게 하는 전략으로 나아온 것 같아 반가울 따름이다. 아직도 다른 한 손에 쥐어진 회복과 안정이라는 고삐가 무겁지만, 전과는 한결 다른 방향으로 달려나갈 우리 중소기업의 미래를 응원한다.

Photo Image
조주현 중기연 원장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조주현 jhcho@kosi.re.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