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반도체 등 국가 전략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의 걸림돌로 지적되어 온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의 완화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첨단 산업 분야의 막대한 자금 조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지 약 두 달 만에 구체적 실행을 예고했다.
이 대통령은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금산분리의 기본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현재 거의 마무리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금산분리 원칙은 본래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으나,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가 필수적인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이미 지나간 문제이자 오히려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기업의 원활한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 중”이라며 제도 개선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알렸다.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의 현장 건의에 화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곽 사장은 AI 메모리 수요 급증에 대비한 선제적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약 600조원, 청주 사업장에 향후 4년간 42조원 등 대규모 투자 계획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곽 사장은 “AI 메모리 공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선제적인 생산 능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도 “단일 기업이 600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투자를 독자적으로 감당하기에는 자금 조달에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어 “수익을 낸 뒤 투자하면 공장 건설과 장비 반입에 3년 이상 소요돼 이미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며 “시장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미래 준비를 위해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최태원 SK 회장께서도 한참 전에 말씀하셨던 부분으로, 투자 자금 조달 문제에 일리가 있다”고 공감을 표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0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접견한 자리에서 “독점의 폐해가 나타나지 않고 타 영역으로 확산되지 않는 선에서 AI 분야의 금산분리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일각에서는 대기업 특혜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 대통령은 대규모 자본 투입이 불가피한 첨단산업의 특성상 새로운 금융 투자 방법론이 필수적이라는 판단 하에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대통령은 이날 SK하이닉스의 과감한 투자를 환영하면서도 수도권 집중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국가 전체적으로 600조원 규모의 투자는 매우 바람직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수도권 집중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며 정책 집행 과정에서 균형 발전과 산업 육성 사이의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