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의 지식과 역량을 증명하는 디지털 배지가 교육계를 넘어 산업계와 정부까지 확산하고 있다. 디지털 배지 활용에 미온적이었던 정부도 최근 인재 양성사업에 디지털 배지를 도입하는 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디지털 배지의 활용 상황과 향후 디지털 배지가 확장성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오랜 시간 디지털 배지를 연구해 온 강동진 영남대 교수를 만났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되면서 지식 전달의 의미와 무게가 과거에 비해 확 줄었죠. 학생들은 경험을 통해 창의력과 역량을 키워야 해요. 단순히 '지식을 공부했다'가 아니라, 지식을 활용해서 어떤 활동을 했다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얘기죠.”
강 교수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역량을 증명해주는 것은 자격증이었지만 이제 수명을 다했다”면서 “하나의 산업 분야에서 셀 수 없이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는데 자격증은 너무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어 정확한 역량을 보여주기에 부족하다”고 말했다.
대학은 마이크로 디그리, 나노 디그리 등 하나의 전공에서도 더 특화된 학문 분야를 배우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만큼 개개인의 역량은 대학 간판과 전공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워지고, 기업에서는 해당 분야와 직무에 맞춘 인재를 원한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공인원)에서는 역량디지털 배지를 발급한다. 강 교수는 공인원과 함께 '공학역량 디지털 배지'를 설계했다. 공인원 인증을 받은 학과에서 일정 조건을 갖춰 졸업하면 다양한 학문 분야에 맞는 역량 디지털 배지를 발급받는다. 설계 능력이 좋은 학생에게는 설계역량 배지를, 디지털 활용 능력이 좋은 학생에게는 디지털활용역량 배지를 발급하는 식이다.
강 교수는 “기존 성적증명서는 학생의 개인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예를 들어 전자과 학생이라면 회로설계를 잘한다고 보여주는 것과 같은 역량 세분화가 필요하다”고 디지털 배지 설계 배경을 설명했다.
교육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2024년부터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 사업에 디지털 배지를 적용한다. 이를 가능하도록 한 장본인이 강 교수다. 그는 역량기반의 공학교육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창의와 융합이 필요해지는데 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정부의 인력양성사업이라고 봤다.

부트캠프 사업에서는 현재 반도체·항공우주·친환경자동차 분야에서 디지털 배지를 발급하며 내년에는 AI 분야까지 확대한다. 공인원 디지털 배지가 학문에서의 학생의 역량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인력양성 사업에서의 디지털 배지는 실무 역량을 증명해주는 방식이다. 공인원은 디지털 배지의 기준을 설계·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강 교수가 말하는 디지털 배지의 또 다른 강점은 역량을 세분화하고, 이에 맞는 학습 과정을 설계해준다는 점이다. 학생이 A라는 역량을 높이고 싶다면 A에 필요한 교과 과정을 보여주고, 학생이 이 과정을 따라가면 자연히 A역량이 길러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
디지털 배지의 제대로 된 활용의 열쇠는 산업계가 쥐고 있다. 그는 “디지털 배지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산업체 참여가 필수”라며 “우리나라 기업은 가만히 있어도 지원자가 찾아오기 때문에 이런 노력을 하지 않지만 미국만 해도 산업체가 대학과 굉장히 밀접해 있어 디지털 배지와 같은 인증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강 교수는 공인원과 함께 산업체 대상 설명회도 지속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안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는 디지털 배지의 효용성을 알리고, 국내 여러 기업이 디지털 배지를 활용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디지털 배지가 확장성을 갖는다면 학생은 자신이 가진 역량을 디지털 배지 하나만으로 증명할 수 있고, 기업은 위·변조의 위험 없이 직무에 맞는 인재를 발굴할 수 있다.
강 교수는 가까운 미래 대학 서열이 사실상 해체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대학의 서열이 사라진다는 것은, 서울과 지방의 차이도 없어진다는 의미”라면서 “미래는 개인의 지식보다 경험과 역량만을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바뀔 것으로 전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