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우리나라를 방문해 이른바 '깐부치킨 회동'으로 화제를 낳았던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 젠슨 황은 방한 전부터 '한국을 위한 선물'을 예고하면서 선물에 대한 궁금증을 한껏 키웠어요. 그가 한국을 찾아와 공개한 선물은 다름아닌 'GPU 26만장'이었죠.
선물이라고 해서 공짜로 주는 건 아닙니다. 돈 받고 파는 거죠. 그렇다고 싸게 파는 것도 아니예요. 제값받고 팔 예정이니까요. 26만장을 한꺼번에 공급하는 것도 아니예요. 내년부터 5년에 걸쳐 나눠 공급하죠.
정리하자면 '엔비디아의 최신 GPU 26만장을 한국에 5년 동안 나누어 제값에 판매하겠다는 약속'이 바로 젠슨 황의 선물이었던 겁니다.
그의 약속에 한국은 열광했어요. 세상을 다 얻은듯 환호했죠.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공짜도 아니고, 내년부터 2030년까지 제품을 제값에 팔겠다고 한 약속에 왜 이리 나라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열광하는 걸까요?
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GPU가 뭐길래 다들 구하지 못해 안달인지, 젠슨 황은 왜 한국을 콕 찍어 지목한 건지, GPU 26만장이 생기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을 살펴볼 거예요.

GPU는 Graphics Processing Unit 즉, 그래픽처리 장치의 약자입니다. 원래는 컴퓨터에서 이미지나 영상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칩이지만, 지금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부품으로 부상(浮上·수면 위로 떠오르다 또는 관심의 중심에 오르다)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GPU는 병렬연산 능력을 인정받아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최적화한 연산장치로 진화했습니다. 중앙처리장치(CPU)는 직렬연산에 강한 반면, GPU는 수천 개의 코어로 동시에 병렬연산을 수행하면서 딥러닝·생성형 AI·자율주행·로보틱스 등 고성능 AI 작업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습니다.
GPT-4 같은 초거대 언어모델을 학습하려면 수만~수십만 장의 GPU가 필요해요. GPU가 없으면 모델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중요성이 커진 거죠.

현재 고성능 AI용 GPU 세계시장은 엔비디아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어요. 특히 최신 GPU인 블랙웰 B200·GB200은 성능이 압도적이란 평가를 받으며 기대수요가 폭증하고 있죠.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GPU는 성능개선에 힘입어 가격폭등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인프라 확보는 국가 안보·산업 경쟁력·기술 주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미국·중국·한국 등 주요국이 GPU 확보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거죠.

GPU는 AI 시대의 '연료'이자 '무기'입니다.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확보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 기술 패권이 좌지우지되는 시대가 된 거죠.
학창시절 롤플레잉 게임(RPG) 세계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엔비디아를 '그래픽카드 잘 만드는 회사'로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롤플레잉 게임이 진화하고 복잡해지면서 빠른 그래픽 처리속도가 요구됐고, 엔비디아는 CPU의 의존을 줄이기 위해 그래픽카드에 별도로 설계한 GPU를 달기 시작했죠. 엔비디아 지포스(GeForce) 시리즈 그래픽카드가 게임마니아들로부터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하드웨어의 개선으로 게임 산업도 상보적(相補的·서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는 관계)으로 발전을 거듭하게 됩니다.
PC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2000년대 초에는 '모든 PC에 지포스 그래픽카드 장착'이란 문구를 PC방 입구에 내걸고 게임마니아를 유혹할 정도였죠.

엔비디아가 처음부터 사업에 성공한 건 아니었습니다. 1993년도 실리콘밸리에 회사를 설립하고, 1995년 오디오·게임·그래픽 기능이 통합된 첫 제품 NV1을 내놨지만, 흥행에 실패하며 회사가 심각한 위기에 몰리기도 했어요.
엔비디아가 세계 최초로 GPU라는 이름이 붙은 그래픽카드를 출시한 건 1999년이예요. 지포스256으로 주목받았고, 이후 지포스FX 등 후속제품으로 잇따라 성공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죠.
GPU가 일반 연산에 활용되고, 과학·공학 분야로 쓰임새가 확장된 시점은 2006년 인공지능(AI)의 씨앗으로 평가되는 CUDA 아키텍처를 발표하면서 부터죠. 그 즈음 엔비디아는 테슬라(Tesla) 시리즈를 선보이며, 고성능 GPU로 고성능컴퓨팅(HPC) 시장에 진출했어요. 2012년 알렉스넷(AlexNet) 출시와 더불어 딥러닝 모델이 엔비디아 GPU로 학습되는 AI 시대 문이 열렸어요.
이후 우리에게도 익숙한 RTX 시리즈를 2018년에 소개하면서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 기술 도입, 영화급 그래픽 구현이 가능하게 됐어요. 2023년에는 초거대 AI 모델 학습에 최적화된 GPU인 H100과 GH200을 출시했고, GPT-4 등 모델에 사용되며 이 시장 최강자로 거듭났습니다.
엔비디아는 2025년 기존 대비 학습 3배, 추론 15배 성능이 향상된 블랙웰(Blackwell) B200과 GB200을 새로 내놨고, 명실상부한 AI 데이터센터 핵심장비로 자리매김시켰습니다.
오늘날 엔비디아는 AI 팩토리·소버린 AI 인프라 구축에 없어서는 안 될 GPU 최강자로 도약하며,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에 대규모 GPU 공급, AI 주권 확보경쟁의 키맨으로 급부상했어요.
그러다보니 모든 국가와 거대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GPU를 확보하기 위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GPU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물량이 달리다보니 엔비디아의 선택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된 거죠.
모든 국가가 미래의 AI 강국 도약을 꿈구며 엔비디아의 간택을 기다리는 이 와중에 젠슨 황은 한국에 최신형 GPU 26만장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했어요. 많은 나라 가운데 젠슨 황은 왜 한국을 선택한 걸까요?
그 이유를 과거와 미래로 나눠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젠슨 황은 지난 10월 30일 코엑스에서 열린 지포스 한국 출시 2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어요. 15년만에 대한민국을 다시 방문한 거죠.

이 자리에서 젠슨 황은 “한국은 엔비디아의 심장이었다”고 말하며,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어요. 그는 “한국의 PC방과 e스포츠가 없었다면 지금의 엔비디아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엔비디아의 여정은 한국과 함께 시작됐다”면서 “한국이 게임·그래픽·AI 기술의 출발점이자 심장부”라고 강조하기도 했죠.
1996년, 젠슨 황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한국을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앱을 만들고, 당신의 기술로 이를 가능하게 해달라”는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어요. 이 편지가 한국과의 인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는 “여러분은 엔비디아의 출발점에 서 있다. 엔비디아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 덕분이다”고 말했어요.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기술적 동반자이자 정서적 중심지로서의 한국을 표현한 거죠. 그도 그럴 것이 앞에서 설명했듯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엔비디아는 재정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어요. 회사 부도까지 내몰린 상황에서 한국 PC방들의 지포스 그래픽카드 폭발적 구매는 엔비디아 위기극복의 한줄기 빛이 됐던 셈이죠.
한국에 대한 애정은 젠슨 황이 미국으로 돌아가 엔비디아 공식 유튜브에 올린 'Korea's Next Industrial Revolution'란 제목의 3분17초짜리 헌정동영상에 잘 나타나 있어요.
이 같은 과거가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거죠. 그렇다면 그는 한국에 어떤 미래를 기대하고 있기에 GPU 공급을 결심했을까요?
한국이 AI에 대해 진심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가 나서 AI 진흥을 선언한 곳은 사실상 한국이 유일할 겁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AI 문제를 기업에 맡겨놓은 데 반해 우리나라는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가 전면에 나서 관련 예산 편성을 편성하고, 국가정책 사업으로 추진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 우리나라 기업이 가진 AI 생태계는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으로 평가되기에 충분하죠. GPU가 제 성능을 발휘하는 데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SK하이닉스,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고, 소버린AI 구현에 적극적인 네이버, 카카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이 있고, 피지컬 AI와 AI 팩토리 구축에 필수적인 로봇 산업에 현대자동차, 레인보우로보틱스 등 수 많은 기업들이 공을 들이면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AI 생태계를 추구하고 있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죠.
AI 제조국으로서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엔비디아의 선택은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을 겁니다.
젠슨 황이 한국을 “AI를 소비하는 나라가 아니라 창조하는 나라”라고 평가하며, AI 팩토리 구축과 GPU 공급을 통해 한국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어요. 이 발언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한국과의 기술·문화·산업적 인연을 되새기며, 앞으로의 AI 시대를 함께 열어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고성능 GPU 26만장 물량이 AI 데이터센터 5곳을 구축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해요. 우리나라는 엔비디아의 GPU 26만장을 활용해 AI 팩토리 구축, 데이터센터 확장, 국가 AI 인프라 강화 등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할 계획입니다.
GPU 26만장은 △정부 5만장 △삼성전자 5만장 △SK 5만장 △현대차 5만장 △네이버 6만장 등으로 나누어 활용할 것으로 예상돼요.
우선 우리 정부는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및 주권형 AI 개발, 공공 데이터 활용 AI 모델 개발과 산업 전반의 AI 확산을 지원하는 데 GPU를 활용할 계획이예요. 정부와 공공기관은 GPU 5만장을 활용해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하고, 공공 데이터 기반 AI 모델 개발 및 산업을 지원 전방위 지원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중소기업·벤처기업이 GPU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스타트업 협업 생태계 조성에도 나서죠.
삼성전자는 반도체 제조 전 과정에 AI를 접목한 AI 팩토리 구축하고, HBM과 GPU를 결합해 차세대 반도체 설계 및 생산 자동화를 추진해요. 반도체 제조 경쟁력에 직결되는 포토마스크 설계 시간을 단축하고, 식각 공정 효율 향상 등 제조 공정에 AI를 접목하는 거죠. 또 엔비디아 옴니버스 기술을 적극 활용해 반도체 생산시설 설계와 시뮬레이션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 기반의 스마트 팩토리를 구현합니다.
SK그룹은 제조 AI 클라우드 플랫폼 개발, 반도체·배터리·소재 산업의 공정 최적화 및 예측 분석에 GPU를 활용할 예정이죠.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설계 역량 강화하고, GPU 기반 AI 모델로 설계 자동화 및 수율 개선에 나설 거예요. SK텔레콤은 로보틱스·디지털 트윈 강화를 목표로 RTX 6000과 블랙웰 서버를 활용해 옴니버스 플랫폼 기반 로봇 제어 및 시뮬레이션 기술을 개발할 거예요.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로보틱스·모빌리티 분야에 AI 적용하고, 차량 설계·시뮬레이션·로봇 제어 등에 GPU 기반 AI 연산을 도입하기로 했어요. 자율주행·로보틱스 AI 모델 훈련에 GPU 5만장을 활용해 차량 인지·판단·제어기술 고도화에 나서는 한편 정부와 함께 30억달러 규모의 피지컬 AI 공동투자에도 나설 거예요.
네이버클라우드는 생성형 AI 모델 개발 및 클라우드 인프라 확장, 한국형 파운데이션 모델과 AI 서비스 고도화를 추진할 거예요. GPU 6만장을 활용해 한국형 파운데이션 모델 및 AI 서비스 고도화 등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하고, 엔비디아와 협력해 고성능 AI 컴퓨팅 환경을 구축하는 등 클라우드 인프라 확장을 준비합니다.
이처럼 각 기업은 GPU를 단순히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AI 중심의 산업 구조 혁신을 위한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엔비디아가 제공할 GPU 26만장이 '옷차림이나 지닌 물건 따위가 제격에 맞지 아니하여 어울리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개 발의 편자'나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로 전락(轉落·아래로 굴러 떨어짐)하지 않게 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어요.
GPU와 데이터센터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전력을 확보하는 문제죠. GPU 26만장을 가동하려면 연간 2.7~4.4테라와트시(TWh)의 전기가 필요하다고 해요. 이는 신도시 2곳이 1년에 소비하는 전력량과 맞먹죠. 정부는 전력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0월 1일부로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시행에 들어가는 등 차세대 전력망 구축 및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면서 적극 대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전력원을 보보하는 일과 더불어 우리가 불필요한 전기를 낭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GPU 26만장은 단순한 하드웨어 공급이 아니라, 한국 산업의 AI 전환을 위한 핵심 자산이자 글로벌 AI 경쟁력 확보의 발판입니다. 한국은 지금 AI 제조국으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예요. 이제 중요한 건, 이를 뒷받침할 전력·인프라·인재 생태계의 속도전이겠죠. 대한민국은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이제부터 힘을 모아봅시다.
최정훈 기자 jhchoi@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