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트럼프 “해외기업 투자 위축 원치 않아”

한미 무역협상 최대 암초
韓 근로자 구금 의식한 발언
정치적 계산·반이민 정서 등
관세 세부협상 얽히고설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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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나는 다른 나라나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을 겁먹게 하거나 의욕을 꺾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의 현지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475명의 근로자를 체포·구금한지 열흘 만이다. 한미 무역합의의 최대 암초가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우리는 그들(해외 기업)을 환영한다. 그들의 직원을 환영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특정 국가나 기업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317명을 포함해 475명을 체포·구금했던 일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를 가지고 미국에 들어올 때, 자국의 전문 인력을 일정 기간 데려와 돌아갈 때까지, 미국인들에게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제품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훈련시켜 주길 바란다”며 “우리가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막대한 투자는 애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신뢰는 크지 않다. 미국 현지에서는 불법체류자 단속·추방 공약이 지지층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불만이 나오고, 한국에서는 정상적인 비원(B-1) 비자 근로자들까지 구금된 뒤라 “언제 입장을 바꿀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를 환영한다면서도 동맹국 근로자까지 구금하는 모순이 쌓이면 어느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현지 근로자를 교육하겠느냐”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농장·호텔 등 이민자 노동력 의존 업종의 단속을 제외하라고 지시했다가 며칠 만에 번복한 사례도 신뢰를 흔드는 요인이다. 반이민정책 지지층을 달래면서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려는 모순적 태도가 결국 양쪽 모두에게 신뢰받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제조업 부흥을 위해 해외 기업을 유치하고 고용을 늘리려는 정책과 반이민 정서를 자극하는 정치가 정면충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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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구금됐다가 석방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결국 이번 한미 무역합의 세부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 미국 내 반이민 정서, 한국 기업의 투자 위축 등이 얽힌 고차 방정식이 됐다. 한국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제조업 부흥 전략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일본이나 대만 투자는 제한적이고,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도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정부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이어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날 방미에 나서며 협상 동력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우리 정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상의 끈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근로자를 교육·취업시키겠다는 것으로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다. 우리로선 불안과 불확실성만 커졌다”며 “대미 투자 방식 등의 세부 조율은 둘째치고, 우리 근로자의 미국 비자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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