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혁신의기술] 〈36〉피지컬 AI, 도시와 공장의 재구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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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엔비디아가 지난 26일 공개한 '젯슨 AGX 토르(Jetson AGX Thor)'는 인공지능(AI) 역사상 하나의 이정표가 될 듯하다. 이 작은 칩 하나가 상징하는 것은 AI가 더 이상 서버실에 갇혀 있지 않고 공장과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대형 데이터센터에서만 가능했던 고성능 AI 연산이 이제 현장의 로봇과 설비에 직접 탑재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AI가 디지털 공간을 벗어나 물리적 세계로 완전히 확장되는 역사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피지컬 AI는 텍스트·이미지를 넘어 현실 공간에서 직접 보고·이해하고·움직이는 AI를 뜻한다. 한마디로 '생성에서 작동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단계다. 공장·병원·물류센터·도로 같은 물리 공간 전체가 AI의 작동 무대가 되면서 우리가 일하는 방식, 살아가는 공간, 그리고 도시와 공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피지컬 AI의 핵심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하다. 현장의 시간은 줄이고, 사람의 안전은 높이며, 도시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 동력은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축인 '엣지 컴퓨팅'은 현장의 두뇌 역할을 한다. 젯슨 토르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전 모델 대비 7.5배 향상된 연산 능력과 128GB 메모리, 그리고 FP4 기준 2,070 TFLOPS급 추론 성능은 로봇과 설비가 더이상 원격 서버에 의존하지 않고도 현장에서 초당 약 2070조번의 계산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제조·물류·헬스케어·교통 등 '움직이는 모든 것'의 자율화 속도를 획기적으로 앞당기는 기술적 토대다.

하지만 강력한 하드웨어만으로는 진정한 혁신을 완성할 수 없다. 두 번째 축인 '상호운용 표준'이야말로 피지컬 AI 생태계의 공통 언어 역할을 한다. 올해 8월 오픈USD 얼라이언스가 발표한 'Core Spec 1.0'과 'OpenUSD v25.08'은 이러한 표준화의 중요한 이정표다. PTC, Esri, TechSoft3D 등 글로벌 기업들의 합류로 더욱 탄탄해진 이 플랫폼은 설계-시뮬레이션-운영을 하나의 통합된 언어로 연결한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공장과 도시의 3D 디지털 트윈을 한 언어로 관리하고 부품 교체나 라인 재배치 시에도 장면 자산을 효율적으로 복사·수정·재사용할 수 있게 됐다. 스케일의 핵심은 바로 이런 표준에 있다.

세 번째 축은 '레퍼런스 실전'으로, 이론을 현실로 옮기는 구체적 성공사례다. BMW가 올해 6월 발표한 전략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전 세계 30여개 공장에 버추얼 팩토리를 확장해 향후 생산기획 비용을 최대 30% 절감한다는 계획은 더이상 '파일럿 프로젝트'가 아니라 운영기술(OT)의 구조적 혁신을 의미한다. 2027년까지 신차 40종 이상을 먼저 가상으로 계획·검증해 라인 안정성을 높인다는 전략은 피지컬 AI가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비즈니스 혁신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한다.

네 번째 축인 '생태계 협력'은 이러한 혁신의 확산을 뒷받침하는 메커니즘이다. 피지컬 AI의 성공적 도입은 단일 기업이나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문제정의→데이터 수집→솔루션 실증→성과 확산'이라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대학-연구소-정부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한다.

이 네 축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우리는 도시와 공장의 운용체계(OS) 자체가 재구성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AI 기반의 '스마트시티'와 'AX 공장'이 동전의 양면처럼 상호 연동된다는 것이다. 공장 데이터는 도시의 물류·안전·에너지 최적화로 이어지고, 도시 인프라의 수요와 제약은 즉시 공정계획과 공급망에 반영된다. 피지컬 AI는 이러한 피드백 고리를 초단주기로 작동시키는 핵심 엔진이다.

결국, 기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피지컬 AI의 진정한 가치는 현장의 시간을 단축하고, 사람의 안전을 높이며, 도시의 효율을 증명하는 작은 승리들을 빠르게 누적해 나가는 데 있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명의 청사진을 그려나가고 있다. 이 위대한 실험의 성공은 기술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혜와 협력에 달려 있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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