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POSTECH)은 노준석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 교수, 기계공학과 통합과정 김예슬 씨 연구팀이 고려대(세종) 전자 및 정보공학과 트레본 베드로(Trevon Badloe) 교수팀과 함께 습도에 따라 스스로 특성을 바꾸는 새로운 광학 기술을 개발했다고 28일 밝혔다.
빛을 활용한 고급 영상 기술에서는 보통 두 가지 모드가 많이 쓰인다. 하나는 '엣지 검출' 모드로, 사물 윤곽이나 경계선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밝은 영상' 모드로, 전체 구조를 고르게 밝게 보여준다. 두 모드 간 전환이 자유로워진다면 영상 분석이 훨씬 쉬워지겠지만, 지금까지는 메타표면이나 공간 광 변조기(SLM) 같은 값비싼 장치나 복잡한 제작 과정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습도라는 간단한 자연 현상을 접목했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재료는 친수성 고분자인 폴리비닐알코올(PVA) 필름이다. 이 필름은 상대습도에 따라 필름 두께와 굴절률이 변하는 특성이 있는데, 연구팀은 이를 이용해 빛의 흐름을 제어했다.
연구팀이 주목한 현상은 빛의 스핀 홀 효과(SHEL)다. 이는 빛이 물질 표면에서 반사되거나 굴절될 때, 편광(빛의 진동 방향)에 따라 아주 미세하게 다른 경로로 나뉘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습도에 따라 PVA 필름의 두께와 굴절률이 바뀌면, 이 스핀 홀 효과도 달라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습도가 낮을 때는 빛이 '소용돌이(위상 도넛)' 모양으로 퍼져 엣지 검출 모드가 구현된다. 그러다 습도가 높아지면(40%→60%) 필름이 물을 머금어 두께가 약간 늘어나고(20㎚ 정도), 빛의 굴절률이 1.52에서 1.50로 줄어들면서 소용돌이가 풀리고 '가우시안 빔(밝게 퍼지는 빛)' 형태로 바뀌어 밝은 영상 모드가 나타난다. 이 변화는 단 0.1초 이내에 일어나 실시간 전환이 가능하다.

연구팀은 이 시스템을 해상도 타깃(정밀한 패턴을 새긴 시편)과 실제 생물 조직에 적용했다. 그 결과, 습도를 40%로 유지했을 때는 물체의 테두리만 뚜렷하게 보였고, 습도를 60%로 높이자 화면 전체가 균일하게 밝아졌다. 이를 플라나리아와 소장 조직 절편에도 적용해보니, 필요할 때는 경계선을 강조하고, 필요할 때는 내부 구조까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노준석 교수는 “저비용, 간단한 구조, 빠른 반응성이 이 기술의 장점이다. 현미경, 휴대용 센서, 의료 내시경 등 장비에서 부품 수와 무게를 크게 줄일 수 있어 작고 가벼운 의료 및 과학 장비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김예슬 씨는 “습도라는 환경과 빛의 물리 현상을 결합해, 저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광학 플랫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라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포스코홀딩스 N.EX.T Impact 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 연구과제, 교육부 대통령과학장학금 등의 재정 지원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성과는 최근 재료, 광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레이저 앤 포토닉스 리뷰(Laser & Photonics Review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