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 풍자 담은 두 작가의 만남

“황창배 선생의 거친 붓이 그 시대를 웃게 했다면, 나는 지금 그 정신 위에 나만의 해학을 덧칠하고 싶었다.”
비록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화가 한상윤(1984~)에게 황창배 화백(黃昌培, 1947–2001)은 정신적 스승이었다. 일본 유학 시절, 풍자만화와 캐릭터 미학을 배우던 그는 황 화백의 거침없는 수묵 붓질과 통렬한 해학에 깊이 사로잡혔다. 이번 전시 〈거침없는 X〉는 연희동 황창배미술관과 오묘서울 전관에서 7월 5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색을 모두 덜어낸 수묵 작업만으로 황 화백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두 예술적 세계가 시공을 넘어 맞닿는 자리다.
황창배는 서울대 회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전 대통령상을 받는 등 탄탄한 엘리트 경력을 쌓았지만, 그 경로를 스스로 무너뜨린 인물이었다. 기존 한국화의 관습과 권위를 거침없이 해체하며 ‘한국화의 테러리스트’라는 별칭을 얻었고, 자유로운 재료와 대담한 붓질로 전통의 고정관념을 뿌리째 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해체는 단순한 파괴로 끝나지 않았다. 통렬한 시대 풍자와 인간에 대한 연민이 교차하는 황창배의 그림들은 한국 현대회화의 새로운 틀을 열었고, 오늘날까지도 ‘회화의 자유’를 상징한다.
한상윤은 그 정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다. 그는 돼지를 통해 자본과 욕망의 시대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면서도, 장자의 자유로운 유랑(‘소요유’)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Eudaimonia(에우다이모니아)’, 즉 조화롭고 충만한 삶의 철학을 작품 속에 은근히 스며들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돼지들은 풍선을 달거나 자동차를 타며 떠난다. 색을 걷어낸 대신 먹선만으로 표현된 그 모습은 감필과 속필, 농담이 어우러진 필획의 리듬 속에서 더욱 생생히 살아난다.
“황창배 선생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묵이 저렇게 거칠고도 통쾌할 수 있다니. 이번에는 그 정신을 나만의 돼지로 다시 펼치고 싶었습니다.” 한상윤의 이 고백은 단순한 오마주를 넘어선다. 수묵의 틀을 깨고 해학으로 다시 세우는 그의 작업은, 파괴 뒤 재생을 통해 끊임없이 순환하는 예술의 본질을 보여준다.
7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오묘서울 전시장에서는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돼지가 왜 자동차를 타게 되었는지, 웃음으로 어떻게 시대를 풍자하려 했는지,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솔직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거침없는 X〉는 색 없이도, 선 하나로 웃고 비틀며 시대를 깨우는 수묵의 위력을 보여준다. 황창배와 한상윤, 두 작가가 만나 서로를 비추는 그 간극은 오히려 우리 시대 회화의 현재와 미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자신문인터넷 이금준 기자 (auru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