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이블코인이 금융권 전반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법정화폐와 일대일로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자산과 전통 금융을 잇는 연결고리로 주목받으며, 결제와 정산· 담보·이자 수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확산 여부는 '어디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느냐'는 사용처 확보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기축통화인 달러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비(非)기축통화국인 한국의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활용도와 확장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떨어질 수 있어, 보다 정교한 전략과 내수 중심의 생태계 설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스테이블코인 사용처 70%는 디파이·거래소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아르테미스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대부분의 스테이블코인은 디파이(DeFi) 서비스(40%)와 중앙화 거래소(CEX) (27.5%)에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카드 결제 등 일반 상거래보다는, 담보 대출이나 이자 수익 창출 등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에 더 많이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래소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암호화폐 간 거래를 위한 일종의 '교환 머니'로 자주 사용된다. 예컨대,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서 사용자가 비트코인(BTC)을 구매할 때, 미국 달러(USD)를 직접 사용하는 대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C)를 먼저 충전해 이를 결제 수단으로 활용한다. 달러로 직접 환전해 사용하는 것보다 수수료가 저렴하고 거래 속도도 빠르다는 장점에서다.
복진솔 포필러스 리서치 리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초기 유동성 확보를 위해 국내외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전략적 제휴가 유효한 방식이 될 수 있다”면서 “한국은 가상자산 거래량이 상당한 만큼, 유통 중인 원화를 스테이블코인 형태로 전환해도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전망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교환 머니'로 활용되기만 해도,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만으론 부족”…민간 개방이 경쟁력
다만, 활용처 확대를 거래소에만 의존하는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 리드는“원화는 국제 경쟁력이 높은 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해외보다는 국내 내수 중심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은행·핀테크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유통으로 점진적으로 도입할 경우, 선불 전자지급수단과 유사한 형태로 일상 결제나 플랫폼 정산 수단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단순한 사용처 확대를 넘어, 내수 기반 디지털 금융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은 충분한 명분이 있다는 얘기다. 핀테크 업계에서도 이러한 확장성을 기반으로, 경쟁을 통해 혁신적인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물꼬를 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민간 사업자에게도 개방하고 있으며, 시장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혁신 서비스가 등장하고 주요 플레이어가 결정되는 구조”라면서 “핀테크 업계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다양한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만큼,비은행권을 일률적으로 배제하기보다는 민간에서도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핀테크 기업은 퍼블릭 블록체인 연동, 사용자 중심 유인책 설계, 디파이 및 국제 거래소 연계 등에서 기술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민간의 기술력과 금융기관의 신뢰성이 결합한 구조로 확장성과 안정성을 갖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실제 싱가포르는 통화청(MAS) 규제 요건을 충족한 핀테크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지난 17일(현지시각) 상원을 통과한 스테이블코인 법안에서 은행 외에도 연방 인가를 받은 비은행 기업을 발행 주체로 명시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정산·리워드' 등 틈새 활용처 주목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중앙화 거래소(CEX)의 규제 준수를 위한 교환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일부 대출 서비스에서는 신용공여 기반 자산으로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 또 페이팔이나 코인베이스처럼 플랫폼 내에서 리워드를 지급하거나, 디파이 풀을 통한 이자 수익(Yield-bearing)등 투자자산으로의 쓰임도 주목받고 있다.
은행 간 기업 간 거래(B2B) 정산 영역에서는 JP모건 '키네시스' 모델처럼 기존 금융 시스템 대비 수수료 절감과 연중무휴(24시간·365일) 결제가 가능한 구조를 강점으로 삼아 활용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생활 결제 수단으로는 신용카드 대비 개인 간(P2P) 직접 결제의 사용 유인이 낮다는 한계가 있지만, 결제 시스템의 백엔드 정산 수단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임민호 신영증권 디지털자산 담당 연구원은 “결국 기술적 장점을 활용한 민간 주도의 혁신을 통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인위적인 수요를 창출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수수료 절감형 정산 구조, 플랫폼 리워드 지급을 통한 자산화, 디파이 기반 이자 수익 모델 등 다양한 수요 촉진 구조가 설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