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이 우리 정부에 고정밀 지도 반출을 재요청한 가운데 구체적인 보안 조치와 국내 서버 투자 계획은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플랫폼 업계는 애플이 2023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배경 삼아 고정밀 지도 반출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정밀 지도 반출 판단이 이재명 정부로 넘어온 상황에서 안보는 물론 국내 영토 주권, 산업 영향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16일 국토지리정보원에 제출한 '지도 등 또는 측량용 사진의 국외 반출 허가 신청서'에서 약 40페이지 분량으로 반출 목적을 설명했다. 전자신문이 입수한 해당 문건을 살펴보면 애플은 자사 지도 서비스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해외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애플 지도의 작동 방식, 보안 조치 등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플랫폼 업계와 관련 기관에 따르면 애플이 이달 제출한 신청서 내용은 2023년 당시 제출한 신청서와 거의 동일하다. 당시 우리 정부는 국가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애플의 고정밀 지도 반출 신청을 거부한 바 있다. 특히 애플이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블러(Blur)', 위장, 저해상도 등 보안 조치를 모두 수용할 의사가 있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신청서에는 해당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포함되지 않았다.
애플은 한국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은 밝혔지만 보안 처리 방식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명시하지 않았다. 국내에 서버를 두기보다는 해외에서 한국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처리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애플은 신청서에서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한국의 안보 및 공익 우려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겠다”면서 “보안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 지도 정보가 저장되는 장소를 한국, 미국, 싱가포르에 소재한 애플의 개발용 데이터 센터로 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플랫폼 업계는 고정밀 지도 반출 판단 시 안보 외에도 영토 주권,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문제는 '영토 주권'이다. 일단 해외 서버로 지도 정보가 반출되면 향후 한국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기 어렵다. 문제가 있어도 위치 정보 수정 요청 등 대응이 쉽지 않다. 한 예로 고정밀 지도 반출을 수용한 이후 애플이나 구글 지도가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하면 한국 정부가 수정을 요청해도 기업이 자사 방침을 이유로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이 국내 공간정보 산업 생태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우려된다. 애플과 구글은 고정밀 지도 반출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확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애플·구글이 국내에 고정 사업장을 두지 않았고 매출도 과소 집계하는 점을 감안하면, 고정밀 지도를 활용해 발생한 수익을 국내에 환원할 가능성은 낮다.
이번에 구글과 애플의 지도 반출이 승인된다면 향후 중국 등 타국 기업이 유사한 요청을 하면 이를 거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중요해지고 있는 디지털 주권과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국제적 흐름을 고려하면 정부의 엄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