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아프리카서 '취업 사기' 쳤나… “샴푸공장이라더니 전쟁터로”

Photo Image
러시아에서 유학 도중 취업사기를 당해 전장에 투입된 세네갈 출신 말릭 디옵(25). 사진=우크라이나군

러시아가 아프리카 국가에서 취업사기를 통해 전장에 투입할 용병을 모집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9일(현지 시각)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카메룬 출신 남성 진 오나나(36)는 자신이 러시아 구인 광고에 속아 전쟁터에 나오게 됐다고 주장했다.

세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인 오나나는 지난해 일자리를 잃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던 중 러시아 샴푸 공장의 구인광고를 접했다. 항공권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은 그는 지난 3월 러시아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당국에 구금됐다. 그 곳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러시아에 온 방글라데시, 카메룬, 짐바브웨, 가나 등의 젊은 청년 10여 명이 있었다.

이들은 샴푸 공장이 아닌 월급 1500파운드(약 280만원)를 조건으로 1년 계약군 복무를 강요받았다.

강압에 의해 계약서에 서명한 오나나는 다른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러시아 로스토프와 루한스크에서 5주간 훈련을 받았다. 훈련 기간 중에는 집에 연락할 수 있었지만, 전선에 투입되기 직전 휴대전화와 가지고 있던 서류를 모두 압수당했다고 한다.

오나나는 지난달 초 전선에 배치됐으나, 배치와 동시에 공격을 받고 의식을 잃었다. 그를 제외한 8명의 외국인 용병은 모두 사망했다. 오나나는 6일간 부상을 입은 채 쓰러져 탈출했으나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혀 포로 신세가 됐다.

그뿐만 아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세네갈 출신의 유학생 말릭 디옵(25)도 취업 사기의 피해자다.

디옵은 우크라이나군 인터뷰에서 “러시아에서 유학 중 쇼핑센터에서 모병관을 만났다. 그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루한스크에서 설거지를 하면 월 5700달러(약 780만원)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디옵은 무기와 수류탄, 헬멧을 받고 토레츠크 근처 전선으로 이동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전선으로 이동 중) 숲속에서 시체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여러 건물에 시체가 잔뜩 쌓여 있었다.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얼마 뒤 디옵은 군복과 무기를 버리고 탈영했다. 이틀 동안 걷던 중 우크라이나군에 발견돼 포로로 붙잡혔다.

포로로 붙잡힌 남성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카메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러시아에 자원 입대했다가 실종된 이들을 찾는 게시물이 다수 게시됐다. 한 외신은 카메룬인 67명이 전장에서 사망했다며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취업 사기를 당해 전장에 나선 이들도 있지만 스무 배가 넘게 차이나는 급여에 자원 입대했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다수다.

텔레그래프는 “이들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수백 명, 심지어 수천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며 “러시아가 3년간의 전쟁에서 엄청난 사상자를 내면서 막대한 수의 신병을 모집하고 있으며, 아프리카나 기타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이 징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들은 대개 전쟁터로 보내지며, 여성들은 무기 제조공장으로 보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국제 조직범죄에 대항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가 드론을 제조하기 위해 아프리카 출신의 젊은 여성 수백 명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