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자료 지위 격하 절차 착수
학교 자율 도입…비용도 발생
개발사 수백억 손실에 소송전
올해부터 학교 현장에 도입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도입 1년 만에 퇴출 위기에 처했다. 국회가 AI 디지털교과서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시키기 위한 절차에 착수하면서 현장 혼란과 개발사들과의 소송전이 예고됐다.
11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AI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법안은 지난해에도 한 차례 국회 문턱을 넘은 바 있다.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교육위와 법사위,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AI교과서의 앞날은 풍전등화다. 민주당은 공약집을 통해 “성급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으로 발생한 교육현장 혼란을 해소하겠다”며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고 학교 자율선택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현장 혼란 해소를 내세웠지만 AI교과서 지위가 교육자료로 격하되면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교육자료는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 학교에서 재량으로 채택하며, 교과서와 달리 비용 부담도 발생한다. 교육자료는 교과서와 달리 무상·의무교육 대상이 아니어서 시도별·학교별 재정 여건에 따라 사용 여부에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또 저작권법 문제도 발생해 양질의 콘텐츠를 활용하기 어려워진다.
교육자료는 검정 절차와 수정·보완체계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내용·기술적인 질 관리를 담보하기도 어렵다. 현재 AI 디지털교과서는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한 접근성, 이주배경 학생을 위한 번역 기능, 개인정보 보호 조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자료는 이같은 조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이에 발행사들은 줄소송을 예고했다. 이미 천재교과서 등 AI교과서 발행사들은 서울행정법원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개발사들은 AI교과서 개발을 위해 수십에서 수백억원을 투입했는데 전면 도입이 미뤄지면서 손실을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AI교과서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는 설명이다.
추가 개발도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는 AI교과서 속도 조절을 위해 사회 및 과학 과목 도입을 1년씩 연기했다. 개발사들은 추가 과목 도입이 늦어지자 개발에 나서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정책은 혼란한 상황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과학창의재단은 내년에 도입할 계획인 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2학년 영어·수학에 대한 AI디지털교과서 검정에 착수했다. 올해 이미 도입된 학년의 AI교과서 재검정도 실시한다. 아직 법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현행법대로 검정 절차 등을 진행하는 것이다. AI교과서로 하는 수업을 도울 디지털튜터도 계획대로 모집 중이다.
이재명 정부도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교육시스템 구축을 공약한 만큼, AI교과서의 지위 논란은 사실상 지난 정부 흔적 지우기를 위한 수순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온라인 코스웨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공공플랫폼과 학생 개인별 클라우드를 통한 학습이력 축적 플랫폼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교육 현장에서 이미 AI가 활용되고 있는 만큼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책도 결국은 AI교과서와 비슷한 모습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 관계자는 “절차에 따라 교과서 검정을 진행 중이며 소송 등은 관련 부서에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다현 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