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디지털전환] AI 산업 '규제:완화=49:51'로 신산업의 첫발을 내딛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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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상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초거대AI추진협의회원(오토노머스에이투지 CSO)

미국 가이드하우스 인사이트의 2024년 자율주행기술 순위 발표에 따르면, 글로벌 톱 20 기업 중 90%를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막대한 민간 자본력과 기술 인재를 앞세워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 중국은 사회주의적 국가지원 체계를 총동원해 인공지능(AI) 경쟁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이들 모델을 그대로 따라잡기는 어렵다. 지금 한국에는 한국형 생존전략, 그리고 산업 육성모델이 절실하다.

AI 산업, 특히 물리적 AI의 대표주자인 자율주행차는 진입장벽이 극히 높다. 소프트웨어(SW) 기반 AI와는 달리 자동차 기반 기술이기에 하드웨어, 인프라, 법제도가 총체적으로 얽혀 있다. 한국에서 1967년 현대자동차 설립 이후 60년 가까이 새 자동차 제조사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이 산업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이라는 사람 생명과 직결된 특성까지 더해진다.

현실은 냉혹하다. GM은 20조원 넘게 투자한 크루즈(Cruise) 사업을 철수했고, 포드와 폭스바겐이 5조원 이상 투자한 아르고 AI(Argo.AI)도 사업을 접었다. 글로벌 대기업도 고전하는 시장이다. 한국은 그보다 자본력마저 열악하다. 현재 국내 시가총액 1조원 이상 유니콘 기업은 약 22개에 불과하고, 이들이 유치한 투자금의 약 90% 이상이 해외 자본에 의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운행 규모의 격차도 크다. 한국보다 약 3배 넓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00대 이상의 자율주행차가, 서울보다 약 2배 넓은 중국 우한시에서도 2000대 이상이 운행 중이다. 반면 한국은 지난 10년간 고작 471대에 머물렀다. 데이터 격차는 곧 AI 학습량의 차이로, 이는 필연적으로 기술력 격차로 이어진다.

피지컬 AI 중 자율주행차는 가장 먼저 규제화가 이뤄지는 분야다. 100년 넘게 구축된 자동차 규제 프레임워크 위에 신기술을 덧씌워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로봇이나 도심형 항공기(AAM)는 기존에 없던 기술이라 오히려 법규를 새롭게 제정하는 데 가깝다. 규제 적용의 난이도와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자율주행차가 생명과 직결된 기술임을 감안할 때 안전 규제는 필수다. 하지만 현재처럼 규제 중심 접근은 신산업 성장에 치명적이다. 특히 레벨 4 자율주행차 시장은 연간 100대 수준으로 생산되는 극초기 시장이다. 연간 1000만대 이상 생산되는 레벨 2 자동차 시장과 동일한 규제 프레임을 이 작은 시장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산업의 숨통은 처음부터 막힐 수밖에 없다. 생산 대수를 기반으로 한 규제의 차등 적용이라도 허용된다면, 적어도 숨은 쉬며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은 좋은 반면교사다. 규제 우선 접근을 고수한 결과, 자율주행 톱20 기업 중 유럽 국적 기업은 단 한 곳에 불과하다. 한국 역시 단 한 곳만 이름을 올렸다. 더 심각한 것은, 유럽 스타트업 시장 시가총액이 1조달러(약 1400조원) 수준에 머무는 반면, 미국은 4조달러(약 5600조원)로 4배 넘게 격차가 벌어졌다. 규제 중심 프레임이 신산업 생태계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따라서 규제와 완화의 비율을 재설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50:50 균형을 지향했다면, 이제는 단 1%라도 완화 쪽으로 기울여야 한다. '규제:완화=49:51'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이 1%의 차이가 스타트업 도전을 살리고, 민간 자본을 시장으로 이끈다.

49:51 프레임은 규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신산업 초기에는 시장을 키우고, 이후 기술이 고도화되고 사회적 수용성이 확보되면 보다 강력한 규제를 설계하면 된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성장 후 규제'라는 순서를 실천하며 성공 모델을 증명하고 있다. 시가총액 2000조원에 달하는 테슬라도 17년간 적자를 견디며 생존했고, 500만대 이상 차량 판매 이후 엔드투엔드 AI 방식 자율주행 전환을 본격화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형 균형이 아닌, 49:51의 전략적 불균형이다. 작은 차이가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고, 미래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신산업의 첫발을 내디딜 마지막 기회다. 그 1%의 기울기가, 우리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유민상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초거대AI추진협의회원·오토노머스에이투지 CSO minsang.offici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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